1939년
진주의 봄은, 남강의 얼음이 녹아 그 맑은 흐름의 바닥에 하늘의 푸르름을 깔아 흰구름을 아로새기게 되는 무렵부터 시작된다. 4월이 되어 강안 남쪽의 죽림이 청색의 선도를 되찾아 백사와 조응하면, 서장대 서쪽의 들엔 샛노란 유채꽃이 황금의 담요를 펼치고, 평거, 도동의 과수원은 일제히 꽃을 만발해서 산들 바람결에 향기를 시가 쪽으로 흘려 보낸다. 꽃 향기에 서린 아지랑이 저편 북서쪽으로 아득히, 아직도 백설을 인 채 지리산의 정상봉이 의연한 모습을 나타내면, 진주의 봄은 스스로의 봄을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 셈이 된다.
139:
규는 상주로 가기로 했다. 규가 상주를 처음 본 것은 지난 봄, 금산에 올랐을 때 그 상봉에서였다. 그때 상주란 어촌이 규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규가 금산에 오르게 된 것은, 남해 이동면 무림리가 고향인 정선채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선채의 말에 의하면, 자기 고향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오직 금산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금산 때문에 세계 어느 곳과도 내 고향을 바꿀 수가 없어 나는 봄, 가을마다 한 번씩은 금산에 오른다. 어때 나와 함께 금산에 올라가 볼 뜻 없나?”
140:
규는 금산의 정상에서 금산의 아름다움과 신비, 그리고 산신령을 느꼈다기보다 거기서 바라뵈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신비에 감동했다. 바다는 조망하는 거리와 위치와 각도에 따라 천변만화한다는 사실을 규는 금산의 정상에서 실감했다.
141: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지리산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바라본 바다는 그저 하늘의 연속이었다. 하늘이 아래로 처지면서 차츰 그 빛깔과 밀도를 더해간다는 느낌, 그러니까 바다와 하늘은 원경에 있어선 다를 바가 없었다. 하늘도 아득하고 바다도 아득했다.
금산 정상에서 바라뵈는 바다는 이와도 달랐다. 아득한 푸르름이 어느 땐 보랏빛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수평선 가득히 무형 무언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침묵의 왕국이라고 할 수도 있는 바다는 규에게 한없는, 그러나 부피도 형체도 불분명한 동경을 안겨주었다. 그 동경은 규가 나이 들어 어른이 되면 정체를 나타내 보일지 몰랐다.
남해로 건너올 때의 배 위에서 본 바다는 달랐다. 운명의 의지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외포를 규에게 주었다.
145:
책과 일용품을 챙겨 넣은 보스턴백을 들고 8월 초의 어느 날 규는 삼천포에서 미조로 가는 배를 탔다.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미조라고 되는 곳을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야스케’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렀다. 신기한 것은, 삼천포나 통영 등지를 ‘육지’라고 하고 남해를 남해라고 발음하지 않고 ‘넘해’라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
네 시간쯤 걸려 미조에 도착했을 땐 긴 여름 해도 기울어 있었다. 상주로 가는 배는 내일 아침에야 있다는 얘기여서 하룻밤을 여관에서 묵기로 했다. ………… 11톤 남짓한 배는 아직 아침 놀이 걷히지 않은 바다를 썰고 나갔다.
149:
상주에서의 그 여름은 규의 회상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거기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그곳을 떠나자 거기에서의 시간이 끝난, 꿈의 빛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빛깔로 윤곽지어진, 이를테면 괄호로 묶여진 삽화처럼 뚜렷한 것이었다.
보스턴백 하나를 들고 아침 바다를 건너 미지의 마을로 찾아 들어가는 소년의 모습, 약간의 불안과 호기심으로 가볍게 흥분하고 있는 소년의 마음.
규는 상주에 도착하자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그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주막집에 하숙을 정했다. 주막집이라고 해도 육지에서처럼 시끄럽게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놀고 하는 곳이 아니었다. 요긴한 손님이 오면 거기다 모셔놓고 간단하게 대접을 하고 돌려보내곤 하는 마을 전체의 응접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인은 김씨라고 하는 중년의 사람인데, 부부가 함께 규를 환대해주었다. 육지에서 공부하러 왔다는 소년을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처럼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다
150:
그곳에서의 규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주막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에서 세수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수를 마치면 벼가 푸르게 자라는 주막집 논 가운데 길을 산책하다가 돌아와서 아침밥을 먹는다. 그러고는 수학 공부를 시작해서 점심때에 이른다. 점심밥을 먹고나면 영어 등 읽는 것만으로 되는 학과의 책을 두서너 권 챙겨 들고 백사와 청송이있는 바닷가의 송림 그늘로 가서 자리 잡고 책을 읽다가 수평선에 눈을 팔다가 한다. 송림을 울리는 솔바람 소리, 해안선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처럼 협화하는 가운데 책에 쓰인 지식이 모래에 스며드는 물처럼 규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얕은 곳을 찾아 헤엄을 치고 모래밭에 엎드려 등을 햇볕에 굽는다. 그럴 때 규에겐 불안도 없고 회한도 없었다. 적막한 바닷가에 혼자 있다는 의식이 왠지 충실한 생명감을 띠고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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