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존재와 풍경
건축가 동료들은 무주에서 진행한 필자의 여러 작업 중 버스정류장을 가장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도 건축가들만 볼 수 있는 시선이 작동해서이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건축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을 이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힘은 그렇게 대단한 힘이 아니라 자연이 할 수 ‘없는’ 일을 제대로 해냈을 때 드러나는 힘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방도로의 버스정류장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땅 위에 존재한다는 일은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땅과 주변의 경관에 필연적으로 포섭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버스정류장만 오려내어 보고 나서 또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통합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것이 버스정류장이 되었든 작은 펌프시설이 되었든간에, 어떻게 서 있을 것인가 하는 점보다 주변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를 우리는 흔히 ‘주변과 조화롭다’라는 표현을 쓴다. 버스정류장 같은 인공 조형물들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벽돌 정류장이든 경량철골로 만든 피신처든 사실은 모두 의도를 가지고 고안한 산물이다. 다만, 벌판에 생명력을 가지고 자연과 맞설 것인가 아니면 휴지통처럼 내평개쳐 둘 것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 있기는 하나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사람들은 불편해 한다.
그래서 필자는 험난한 산자락이 펼쳐진 무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버스정류장을 만들기 위해 다소 과장되지만 건축의 총체적 접근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테면 대자연의 풍경과 섞일 수밖에 없을 때 작은 구조물이나 건축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건축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가정한다면, 그 존재에는 존재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외롭게 홀로 떨어진 존재(버스정류장)이지만 거대한 풍경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무주의 버스정류장을 만드는 첫째 원칙은 정류장을 힘 있게 존재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콘크리트 재질로 된 두께 25m의 강력한 벽체를 세웠다. 벌판에 스스로 서 있는 벽체야말로 공간을 안정시키는 최소한의 힘이다. 그 벽체의 한 부분을 창처럼 도려내어 버스정류장 뒤편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창으로 오려낸 사각형을 90도 앞으로 회전해 사람들이 앉을 의자를 만들었다. 의자는 마치 콘크리트 벽체에 덧붙인 부가물이 아니라 콘크리트 벽에서 생성된 한가족처럼 보인다. 그 위로 낮은 경사의 지붕 구조물을 얹혀 버스정류장은 완성된다. 작지만 모든 요소가 강력하게 서 있는 벽체로 모이고 벽 사이에 열린 창으로 주변 경관이 집중되어 들어온다. 바로 주변 경관이 버스정류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콘크리트면은 자연경관의 일부가 된다.
서로 그렇게 서 있으면서 교환되는 풍경 속에 대립과 관입이라는 시각적 체험이 작동한다. 그래서 두 번째 원칙은 홀로 외향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의 힘을 프레임의 법칙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존재는 주변과 관계를 맺고 당당하게 전체 풍경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거듭해서 얘기하자면, 버스정류장의 벽체에서 정류장의 근원적 힘이 나오는 것이며 또한 하나의 벽체가 명료하게 존재할 때 건축의 본질을 반쯤 실현하는 것이다. 사실상 벽과 지붕이 있으면 반쯤의 집이 구성된다. 여기에 사람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의자 그리고 지붕과 벽이 있다면, 이것은 가설적인 정류장이 아니라 ‘집’이 된다. 이곳은 버스정류장이기도 하지만 건축요소로 보면 하나의 방이 있는 집이다. 집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방이다. 무주처럼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곳에서 버스정류장은 그 나름의 물성과 존재의 근거로 자연과 대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산은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힘으로 존재한다. 작은 버스정류장도 ‘너는 산이고, 나는 구조물이다’라고 하는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이 있다면 정류장에 모이는 사람들에게 ‘근접성’을 높이는 일이다. 보통 좁은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이 거북해서 서로 피하려 한다. 일렬로 버스정류장에 앉은 사람들은 서로 앞만 보면서 낯섦을 확인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무주의 버스정류장에서는 의자가 ‘ㄱ’자여서 서로의 시선이 은근히 교차되고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관계’를 만든다.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게 된 사람 간에 관계를 적절히 만들어주는 것이다.
무주의 할아버지들은 버스정류장에서 편안히 앉아 있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앉아서 무주 풍경의 일부가 된다. 어떤 점에서 버스정류장은 버스가 아니라 기다림을 기다리는 곳일 수도 있다. 풍경을 초대하고 바람을 막아내고 시선을 움직이는 버스정류장은 농촌 속에 서 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