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한 사회의 감수성

이춘아 2022. 11. 3. 15:24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21(2017 초판)

(181~188쪽)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무능했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다. 책임지는 사람의 부재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만으로 참사 이후 나타난 문제점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성급하게 진행된 치유 프로그램, 지역사회의 편견, 학교에서의 부정적 경험, 민간과 공공 영역 곳곳에서 한국 사회의 무능함이 드러났다.

트라우마는 삶 자체가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다. 치유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난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를 치료할 때는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으며 다가가야 한다. 폐렴 환자한테 항생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는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치유 프로그램은 대부분 성급하게 진행됐다.
연수원 프로그램을 보면 오전에 ‘상실의 고통 치유’를 한다. 오후에 바로 ‘아픔에서 희망으로’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전에 평생 잊지 못할 참사 경험을 이야기하고 오후에 그 아픔을 희망으로 승화하자고 하는 식이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프로그램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은 정말 힘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한 생존 학생은 참사 이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서를 남긴다. 또 다른 학생은 영화관이나 노래방에 들어가면 비상구부터 찾는다. 여느 10대들처럼 ‘까르르’ 웃다가도 주변을 둘러본다. 웃어도 되나 두렵다. 큰 소리가 나면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두통과 강박, 우울증도 흔하다. 참사가 남긴 후유증은 계속된다.
하지만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치료받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악성림프종으로 앓아 눕고 숨을 거둬도 산업재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피해자를 동일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개인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역사가 다르기에 같은 참사를 겪은 뒤 서로 다른 이유로 상처받으며 시간을 견뎌냈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짚는 부분이 있다. 가장 기억해야 하는 점이 세월호 지원 대책에 포함된 대학 특별전형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특별전형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의 태도가 문제였다. 관련 뉴스 기사에 ‘친구는 죽었는데 너는 좋은 대학 가서 좋겠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것이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학생들은 그때부터 단원고 출신이 낙인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한국사회가 재난 대응 과정에서 반드시 바꿔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유가족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보상이나 여타 지원 내용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과장해 보도했고, 참사로 고통받는 피해자를 운 좋은 사람 취급했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과 피해자를 이간질했다. 얼마 전 일본의 재난 연구자 한 분을 만났다. 일본의 경우, 스나미 등 대형 재난을 겪은 지역에는 정부가 여러 지원을 수행하지만, 누구도 그 내용을 입에 올리지 않고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원 내역을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되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당사자가 애도하고 치유에 집중하도록 사회가 침묵해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감수성이고 실력이다.

2014년 생존 학생들이 2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나오는데 한 지역 주민이 ‘단원고 3학년이니, 2학년이니?’ 물었다. 2학년이라고 대답하니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 했다. 학생들이 구경거리가 된 셈이다. 평소 가깝게 지낸 이웃도 정부 지원을 ‘세월호 빽’이라고 했다. 아이가 살아서 왔는데도 지원을 받으니까 운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지역사회는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서도, 악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 생존 학생이 갑자기 몸 반쪽에 마비가 와서 걷지 못했다. 병원에 갔더니 세월호 사고 후유증과 관련 없다며 치료를 못 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과 시행령에는 2016년 3월 28일까지 “4.16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자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에 한하여 의료지원금을 지급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이 질병이 참사로 인한 것이라는 증명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 것이다. 병원이 치료 뒤 의료지원금을 못 받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세월호 참사 문제만은 아니다. 산업재해 노동자가 암이나 만성질환에 결렸을 때 직업과의 인과관계를 법정에서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과 같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암에 걸려도 공무 중 부상 처리를 받기 쉽지 않은 것과 같은 경험이다. 피해자 개인에게, 자원과 자본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인과관계 증명의 부담을떠넘기는 한국사회의 취약함이 세월호 참사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단원고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심리 상담을 한 스쿨닥터(정신과 의사)와 '아름다운 배움’이라는 대학생 단체가 도움이 됐다. ‘아름다운 배움’은 멋진 프로그램을 짜 오거나 생존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야겠다는 강박을 갖지 않았다. 단지 생존 학생들과 함께 놀고 치킨과 피자를 먹으면서 오랬동안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마음을 터놓기 새작했다. 고민 상담도 했다.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학생들을 채근하지 않고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왔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충분한 신뢰를 쌓기도 전에 ‘어떤 상처인지 입 밖으로 말해야 트라우마가 극복된다’며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땐 언제나 곁에 있겠다’며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저분들(유가족)이나 (살아 있는) 나나 내 친구들을 보면 피눈물이 날 거 같아요. 그래서 눈에 안 띄려고 하는데…. 솔직히 진짜 저 같아도 가슴이 뭉그러질 거 같아요.” 생존 학생들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느꼈다. 어쩌면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감정이다. 다만 함께 품고 갈 수는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정확히 그 반대로 작동했다. 그들에게 ‘선량한 피해자’의 롤모델을 요구했다. 보이지 않는 우리가 피해자들을 가뒀다.

생존 학생들의 군 입대 관련 병무청 설명회가 있다. 나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병무청에서 일반 입대자와 똑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세월호 생존 학생을 어떻게 배려하겠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부모님이 원하는 게 면제나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트라우마는 짧은 시간 검사하는 것만으로 놓치는 게 있으니까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정확하게 신체검사를 하도록 조치해달라는 말은 하실 수 있잖아요’라고 부모들에게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답은 ‘경험상 내가 그 말을 하면 내일 언론에 나온다’였다. 그 정도 말도 특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도된다는 뜻이었다.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제대로 지원하는 데 가장 중요한 텐데, 마치 거미줄에 얽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같았다. 정부 지원은 내용과 방식에 상관없이 항상 감사히 받아야 하고, 가끔 웃을 일이 생겨도 미소 짖지 말아야 하고, 화내면 안 되는 선량한 피해자 모습을 강요받고 있었다.

어떤 재난에도 갈등은 존재한다. 살아온 역사와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들도 각자 입장이 다르다. 모든 피해자가 끝까지 하나로 뭉치는 경우는 드물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생존 학생 가족과 유가족 간 갈등이 있다.
유가족들은 생존 학생을 볼 때마다 자신의 아이가 떠올라 슬프고 화날 때도 있다. 생존 학생 가족은 세월호 집회에서 사회자가 유가족만 소개하고, 앞자리에 먼저 앉히는 모습을 보고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옳고 그런 것이 아니다. 재난에서 나타나는 삶의 복잡성이다. 피해자와 일반 국민의 갈등도 당연히 존재한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갈등을 더 부추겼다.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을 나누고, 피해자와 국민을 떼어냈다. 우리 사회 역시 그 골을 좁히지 못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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