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윤 홍주연, [더 해빙(The Having)], 수오서재, 2020.
(183~187쪽)
“괜찮아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기운을 끌어모으는 듯했다. 이 와중에도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있었다. 혼자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저녁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호텔을 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한 미술관이었다. 그림과 조각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내 마음은 계속 다른 곳에 있었다. 서윤의 상태가 염려되었던 것이다. 이제 서윤은 나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가르침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느라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서윤이라는 한 사람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지워진 것만 같았다. 미술관을 서성이며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귀한 마음에 반드시 보답하겠노라고.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서윤이 머무는 호텔로 돌아갔다. 얼마 안 가 서윤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나타났다. 아침까지만 해도 쓰러져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밝고 화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내가 염려할까 봐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뜻을 물어보았다.
“조금 더 쉬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도 돼요.”
서윤이 다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킬 때 가장 마음이 아파요. 이대로 홍 기자님을 보낸다면 제 자신을 책망하느라 더 힘들 거예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뜻을 존중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길 같았다. 우리는 Having에 대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메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한 뒤 나는 전날 Having 신호등을 활용한 것에 대해 털어놓았다.
“두 번째 주문 다음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주문을 취소했지요. 그것이 빨간불이었을까요?‘
”홍 기자님의 뛰어난 점이 그거예요. 제가 말씀드린 것을 잘 이해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요. 네, 잘하셨어요. 그건 빨간불이 맞아요. 스스로가 답을 알고 있었던 거죠.“
편안하고 따뜻한 미소가 마치 나를 격려하는 듯했다.
”Having의 핵심은 편안함이예요. 진정한 편안함이란 내 영혼이 원하는 것과 행동이 일치될 때 느껴지는 감정이거든요. 흘러가는 물 위에 떠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느낌이죠. 이 감정이 바로 우리를 투자로 이끌어주는 신호예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새기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물 위를 떠가는 느낌. 그것이 편안함이었다.
문득 생각나 듯 서윤이 나에게 물었다.
”홍 기자님, 지갑에 지폐가 있으면 한번 꺼내보시겠어요.
20유로 몇 장을 꺼내 들자 그녀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돈에 대해 불편하다고 느끼세요?”
“아니요. 평소에도 그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걸요.”
한발 더 나아간 답을 끌어내려는 듯 서윤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 표정 덕분인지 조금 더 생각을 확장시켜보았다.
“다시 말해볼게요. 그 돈이 불편하지 않아요. 그저 편안하게만 느껴지는걸요? 아마 ‘있음’을 느껴서 그런가 봐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서윤은 테이블 위에 놓인 투명한 물잔을 들었다. 물이 3분의 2쯤 차 있는 종 모양의 잔이었다. 그녀가 컵을 좌우로 흔들더니 움직임을 멈추고 내 눈을 응시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 컵이 우리에게 있는 부의 그릇, 물은 돈이라고 생각해보죠. 이 컵이 마구 흔들리면 어떻게 될까요?”“무링ㄴ 흔들려서 밖으로 나오겟지요?”
“마음의 그릇도 마찬가지예요. 물컵이 갈팡질팡 흔들리는데 재물이 온전히 담겨 있을 리 없죠. 마음이 편안할 때 그 안의 물도 차분하게 머무르는 법이예요. 제가 만난 수많은 부자들은 대부분 돈에 대해 편안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있어요. 부자여서 마음이 편안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마음이 그들을 부자로 이끌었죠.“
에피타이저로 주문한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나왔다. 부드러운 치즈를 숟가락으로 섞으면서 서윤의 설명을 음미해보았다. 문득 프랑스로 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에 관련된 일화였다.
”그러고 보니 마윈도 ‘기분이 안 좋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고 해요. 대신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고 한다네요. 혹시 마윈도 돈에 대해 편안하게 느끼고 있는 걸까요?“
내 질문에 서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좋은 사례를 말씀하셨어요. 저는 마윈이 이미 Having을 해왔다고 확신해요.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는 말을 뒤집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뜻이거든요. 그 말은 편안함이 기본 상태란 말이죠. 그것이 Having의 핵심이예요.
그녀가 자상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마윈이 남들처럼 ‘기분 나쁘다’, ‘짜증난다’라고 말하는 대신 ‘편안하지 않다’고 한 것에 주목해요. ‘편안함’을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죠. 편안함이 돈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는 것을, 진짜 부자의 비밀이 Having이라는 것을 잘 아록 있었다는 이야기예요.”
설명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이 있었다.
“편안함을 각인한다는 것….,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네.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말은 결국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우리 뇌는 부정문을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해당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만 입력하죠. 예컨대 ‘편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뇌는 ‘편안’만 입력하고, 반대로 ‘짜증이 난다’고 하면 ‘짜증’만 각인시키는 식이죠. 이렇게 볼 때,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라는 말은 결국 편안한상태가 본인에게는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는 뜻이에요.”
'문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의 소리들 (4) | 2023.05.25 |
---|---|
드라이브 마이 카 (1) | 2023.05.20 |
데미안 (6) | 2023.05.11 |
진짜 영웅은 생활의 매일매일을 바꿔가는 사람입니다 (6) | 2023.05.06 |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6) | 2023.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