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이춘아 2023. 4. 22. 00:16

한강, 디 에센셜 [한강], 문학동네, 2022.

(디 에센셜 시리즈는 작가의 핵심 작품들을 큐레이팅하여 한 권으로 엮은 스페셜 에디션임)

(305~309쪽)

어린 시절  내가 느낀 아버지의 가장 지배적인 인상은 ‘피곤하시다’는 것이었다. 낮이면 국어교사로, 밤이면 글쓰는 사람으로 네다섯 시간밖에 못 자며 아버지는 꽤 오랜 시간을 버텼다. 새벽 네시쯤부터 안방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렸다(오랫동안 아버지에게는 서재가 따로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아득히 들려오던, 타닥, 타다다닥, 드르륵, 땡, 하는 소리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러다 아침결에 아버지가 잠깐 토막잠을 붙이는 동안 우리 형제들이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을 때면, 어머니가 우리에게 수저 소리를 못 내게 했던 것이다. 예민한 아버지가 숟가락 소리에 깰까봐 우리는 가만히 숟가락을 상에 놓고, 쉬쉬 귓속말로 얘기하며 가만히 밥을 덜어먹었다. 그러다 누군가 실수로 큰 쇳소리를 내면 숨죽여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불우한 시절이라 이사를 많이도 다녔는데, 중흥동에서도, 삼각동에서도, 풍향동에서도, 서울 올라와 수유리에서도 어김없이 새벽이면 타자기 소리가 들렸다. 수유리에 이사온 지 이 년쯤 뒤 워드프로세서를 들여놓으며 처음으로 그 소리가 사라졌다. 새벽 네시부터 여덟시까지 일하는 아버지의 습관은 하루의 예외도 없이 이어져, 낙향하신 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집안에 어떤 우환이 있어도, 아무리 몸이 아파도, 입원을 하거나 상가에서 밤을 새우거나 하지만 않으면 자명종 없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신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허리디스크를 앓으셨는데, 의자에 앉기 어려울 만큼 통증이 심할 때는 워드프로세서 밑에 두꺼운 책을 여러 권 깔아 높이를 맞춘 뒤 서서 일하셨다.

고백하자면 아버지를 잘 이해했던 것 같지는 않다. 왜 늘 저렇게 피곤하실까. 인생은 꼭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막연히 그런 의문을, 때로는 불만을, 때로는 연민을 가졌을 뿐이었다.

단 하루, 잠깐의 기억이 남아 있다. 여덟 살 즈음, 중흥동의 조그만 한옥에 살던 때다. 식구들 모두 마당에 나와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햇빛이 밝은 초여름날이었다. 우리 형제들은바가지를 들고 작은 화단에 물을 주고, 어머니는 시멘트가 얇게 발라진 마당에 양동이로 물을 부어가며 비질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적갈색 ‘다라이’에 호스로 물을 받고 있었다. 두 분이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다 웃는가 싶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양동이를 들고 가 아버지의 등에 물을 끼얹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아버지는, 늘 지쳐 보이고 어렵기만 하던 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껄껄 웃으며 호스를 들고 어머니에게 물줄기를 쏘았다.

그 순간이 나에겐 일종의 개벽이었다.
아! 어른들도 장난을 하는구나!
두 어른은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차갑다고 외쳐대며 서로에게 물을 끼얹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껄껄껄, 까르륵까르륵 웃어대는 그이들을 향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가 소리지르며 합세했다. 서로서로 물을 뿌리고 쫓아가고 도망가고 비명을 질러댔다. 온통 부서지고 튀어오르고 흩어지는 게 햇빛인지 웃음소린지, 눈부신 물줄기, 물방울들인지 알 수 없었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따뜻함과 차가움, 노동과 휴식, 병과 치유, 꿈과 현실, 애정과 오해, 기대와 실망, 잠깐 마주잡는 손길, 잠깐 마주치는 눈빛들… 속에서우리는 나아간다. 사실 식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식구가 주는 애틋함을 말하려 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이 모든 삶의 국면들을 함께 매만지며, 상처를 공유하며 나아갔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한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아홉 살 즈음, 걸을 수 없을 만큼 고열이 오른 나를 아버지가 업고 소아과로 달리던 기억.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버지의 발소리. 그 등의 온기. 고등학교 때 내가 급체했을 때,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받으시던 기억을 떠올려 척추 마디 하나하나를 한 시간 가까이 꾹꾹 눌러주시던 밤. 방학 때면 늦잠 자고 싶어하는 우리 남매들을 억지로 깨워 뒷산 손병희 선생 묘 앞까지 데리고 가 맨손체조를 시키시던 것이 지극한 사랑이었음을.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 찾아온다. 그것이 자식의 운명이다. 인생은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 없이. 불만도 연민도 없이. 말도 논리도 없이. 글썽거리는 눈물 따위 없이. 단 한 순간에.

오랫동안 아버지에 대한 글을 피해 도망다녔다. ‘귀밑머리 희어질 때쯤 쓰겠습니다’라는 말이 내가 정해둔 변명이었다. 아직 귀밑머리는 희어지지 않았지만, 가르마 오른쪽으로 희끗한 머리칼이 부쩍 눈에 들어온다. 기억들은 모두 조각조각이고, 그 조각들 하나하나에 어린 빛은 제각기 다른 말을 한다. 씌어지는 것보다 씌어지지 않는 것, 씌어질 수 없는 것이 더 진한 말이라는 것을 간신이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이 글을 마쳐야 하는 지금은 아침 일곱시 십 분 전, 아버지가 아직 책상 앞에 앉아 계실 시각이다. 이곳 서울에서 남해 바닷가의 외풍 센 방까지, 쏜살같이 공간을 넘어… 지금 아버지가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십수 년 된 회색 오리털파카를 입고, 돋보기안경을 끼고, 서리처럼 머리가 희어진 아버지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