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숲의 소리들

이춘아 2023. 5. 25. 19:32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9(1993 초판).

(172~175쪽)

나의 생활은 그 자체가 오락이었으며 끝없는 신기로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장으로 구성된 끝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우리가 항상 최근에 배운 최선의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을 조절해나간다면 우리는 결코 권태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천재성을 바짝 쫓아가라. 그리하면 그것은 반드시 시간시간마다 새로운 경관을 보여줄 것이다.

집안일은 즐거운 소일거리였다. 마루가 더러워지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침대와 침대보를 짐 하나로 싸는 식으로 해서 모든 가구들을 집밖의 풀밭 위에다 옮겨놓았다. 그러고나서 마룻바닥에 물을 끼얹고 호수에서 가져온 흰 모래를 그 위에 뿌리고는 마루가 깨끗하고 하얗게 될때까지 대걸레로 북북 문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아침 식사 끝낼 무렵이면 집 안은 아침 햇볕으로 충분히 말랐으므로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명상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내 모든 살림 도구가 풀밭 위에 나와 집시의 봇짐처럼 한 무더기로 쌓이고, 내 삼각 탁자가 책과 펜과 잉크가 그냥 놓인 채로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그 물건들도 밖으로 나온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다시 안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때때로 나는 이것들 위에 차일을 치고 그 아래에 앉아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물건들 위에 햇빛이 비치는 것을 본다든가, 바람이 그 위로 거리낌 없이 스쳐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무리 우리 눈에 익은 물건이라도 집 밖에 내놓으면 집 안에 있을 때와는 아주 색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바로 옆의 나뭇가지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있고, 보릿대국화는 탁자 밑에서 자라고 있고, 검은 딸기의 넝쿨은 그 탁자의 다리를 휘감고 있다. 주위에는 솔방울과 밤송이 껍질들이 그리고 딸기 잎사귀들이 흩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형상들이 탁자나 의자, 침대 같은 가구에 새겨진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로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즉 이 가구들이 한때는 그런 자연 속에 놓여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의 집은 언덕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숲이 바로 거기에서 끝나고 있었으며, 집 주위에는 한창때의 리기다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호수까지의거리는 30미터쯤 되었으며, 집에서 호수로 가는 길은 언덕을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로 되어있었다. 집앞의 뜰에는 딸기와 검은 딸기, 보릿대국화, 물레나무, 미역취, 떡갈나무의 관목, 모래벚나무, 월귤나무와 감자콩 등이 자라고 있었다.

5월말이 되면 모래벚나무는 작은 줄기 주위에 원통형의 산형꽃차례로 피어난 섬세한 꽃들로 길 양편을 장식했다. 가을이 되면 이 나무의 줄기는 꽤 큼직한 보기 좋은 열매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방사선 모양의 화환처럼 사방으로 휘어졌다. 나는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열매를 하나 따먹어 보았으나 맛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옻나무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나지막한 토담을 뚫고 위로 벋쳐나와 집 주위에 무성했는데, 첫해에 벌써 5,6피트나 되는 높이로 자랐다. 옻나무의 넓고 깃털 모양을 한 열대성 잎사귀는 이국적이면서도 보기가 좋았다. 그것의 커다란 새싹은 늦은 봄에 죽은 것 같아 보이던 마른 줄기에서 갑자기 터져나오면서 마치 마술처럼 푸르고 여린 직경 1인치가량의 아름다운 가지들로 자라났다. 그 가지들이 너무 빨리 자라서 마디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 어떤 때 내가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싱싱하고 여린 가지가 자신의 무게에 겨워 부러지면서 갑자기 부채처럼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꽃이 피었을 때 수많은 야생벌들을 끌어들였던 커다란 딸기 덩굴들은 8월이 되면 점점 우단 같은 밝은 진홍색을 띠는데, 이 딸기들도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휘어지면서 자신의 여린 줄기를 부러뜨리는 것이었다.


국립생태원(충남 서천)에 있는 소로우의 통나무집

통나무집 아래 월든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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