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제프 위스너 엮음, 베리 모저 그림, [소로의 야생화 일기](김잔디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7.
옮긴이의 말: 이 책은 소로가 식물 관찰 결과를 기록하기 시작한 1850년부터 10여 년간 쓴 일기 중 콩코드의 풀과 꽃, 나무가 등장하는 부분만 따로 엮은 것이다. 하루하루 꽃에 대한 관찰을 남긴 기록이지만 그 자체로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한 묘사와 깊은 사색이 녹아 있다.
소로는 바위틈에 살짝 비치는 꽃눈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따뜻하게 바라보았고 풀꽃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고 생명을 심어주었다. 심지어 콩코드의 조그만 풀밭이나 늪, 길가에도 이름을 붙였다. 아잘레아 늪이나 데스모디움 길, 매말톱꽃 절벽, 물망초 호숫가… 그래서일까? 이 책에는 수백 종이 넘는 꽃이 등장하지만, 어지럽게 식물명이 나열되었다는 느낌보다는 고향집 마당과 길가에 자라는 풀꽃들을 보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느끼게 해준다.
실용적이면서 몽상적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이며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는 소로. 이 책에서는 그의 상반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십분느낄 수 있다. 또한 [소로의 야생화 일기]가 특별한 이유는 소로 특유의 감각과 사색이 짧고 직관적인 문장에 녹아 있어 편안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콩코드의 숲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시적인 심상 역시 뛰어나다.
소로는 다양한 학문분야를 아우르며 집요하리만치 분석적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도 시인답게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소로의 글이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그는 “시인이 어디를 가든 어떤 곳을 상상하든 그에게 대지는 꽃으로 된 정원이다” “강의 때문에 올겨울 외국에 나갈 일을 생각하면, 여태껏 누려온 무명과 가난이 얼마나 이로운지 깨닫게 된다”라고 말한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마을에는 상습적이고 절망적인 술꾼이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소로에게 무명과 가난은 꽃으로 된 정원에서 마음껏 관찰하고 사색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149~150쪽)
1852년 5월26일
관찰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왔다. 들판이 애기수영 꽃으로 붉어지기 시작한다. … 채닝은 붉은토끼풀 꽃을 보았고 아메리카알락해오라기의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하다. 캐나다송이풀은 참 형편없는 이름이다.
1853년 5월26일
코낸텀에 있는 술집 근처의 불가리스매자나무는 내가 본 중에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불룩한 관목이다. 원뿔형 건초더미처럼 생겼는데 폭이 넓고 잎이 무성하며 효모로 부풀린듯 불룩하다. 이렇게 어둡고 보슬비가 내릴 때는 동양의 미가 느껴진다. 잎과 꽃이 평행하게, 아니 동심원으로 화환을 엮은듯 배열되어 있고 가지가 서로 분리되어 전체적으로 가벼운 인상을 준다. 가지 웃면에 짙은 초록 잎으로 엮은 화관이 있고 생기 넘치는 노란 총상꽃차례가 아래쪽에 늘어진다. 불가리스매자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렇게 꽃과 잎이 농밀하게 얽혀서 작고 짙은 꽃들이 지나치게 뭉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 노란 법의를 입은 티베트 승려가 떠오른다. 가장 아래쪽 화환은 거의 땅 위에 누워 있다. 가까이 가면 달걀만 잔뜩 넣고 조미하지 않은 덜 익은 버터 푸딩처럼 역한 냄새가 난다. 이 관목에서 붉고 시큼한 과일이 익으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1855년 5월26일
미국흰참나무 꽃가루가 떨어지고 있다. 요 근래 추운 날씨 때문인지 참나무가 작년보다 4일 정도 늦게 꽃가루를 뿌렸다.
1859년 5월26일
지금 노봉색산차 늪에 캐나다철쭉 꽃이 완연하다. 눈부신 색채의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