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동물도 수학을 할까

이춘아 2023. 7. 27. 09:08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2008(2001 초판).

우리나라는 굼벵이 천국이다. 그렇다고 느린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빨리 빨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첫마디인 마당에 굼벵이 나라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다름 아닌 매미 왕국이라는 말이다. 국토의 어디를 둘러봐도 망가지지 않은 환경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이 땅에 어디서 그렇게 많은 매미들이 기어나오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나 많으면 매미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이룰 수 없다며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복에 겨운 사람들까지 있을 지경이다. 정말 천적이 사라져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매미들이 제 세상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오염된 흙 속에서 겪는 굼벵이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물론 수를 인지하고 하는 행동은 아니겠지만 매미들 중에는 13년 또는 17년마다 화려한 외출을 하는 것들이 있다. 그들은 알이나 애벌레, 즉 굼벵이로 12년 또는 16년을 땅 속에서 보내고 13년 또는 17년째 되는 해에야 비로소 매미로 변신을 꾀한다. 13과 17이라는 수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라. 신기하게도 그들은 오직 1과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나누어지는 소수들이다. 그 매미들만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포식자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수학문제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도 과연 수의 개념을 갖고 있을까? 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를 비롯하여 까마귀, 앵무새, 쥐 등에게는 막연하나마 원시적인 수의 개념이 존재한다. 수의 개념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많고 적음을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다. 꽤 많은 동물들이 그 정도의 판단력은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일본과 미국의 영장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들은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다. 

미국 남서부 사막지대에 사는 꿀단지개미들은 종종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한다. 그렇다고 다짜고자 물고 뜯는 싸움을 벌이지는 않는다. 아군과 적군이 하나씩 짝을 지어 마주 보며 일종의 과시적인 행동을 연출하는 퍽 점잖은 전쟁을 한다. 다리를 꼿꼿이 세워 되도록 몸을 크게 보이려 하고 틈만 나면 앞발로 상대를 은근히 짓누른다. 

이들의 전투는 결국 수의 대결로 끝이 난다. 모두 일 대 일로 짝을 짓고 난 후 그래도 병사들이 남아도는 나라가 결국 적진 깊숙이 밀고 들어갈 수 있다. 전략을 잘못 세워 적군에 비해 너무 적은 수의 병사들을 전장에 내보내면 적군이 후방까지 쳐들어오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그래서 늘 적의 병력을 파악하고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 

개미들의 전쟁에는 소대장이 있어 돌격을 외치는 것도 아니고 작전참모가 있어 수시로 전략을 세울 수도 없다. 하지만 꿀단지개미 군대에는 연락병개미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련을 하고 있는 병사들 숲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혹시 아군에 열세에 놓인 것은 아닌가 점검하고 다닌다. 만일 열세라 판단되면 재빨리 후방으로 돌아가 병력을 강화하라는 지령을 전한다. 그들이 아군의 수와 적군의 수를 세어 뺄셈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비교는 할 줄 안다는 얘기다. 아마도 짝이 없어 혼자 있는 병사들이 주로 적군이면 아군이 열세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몇 년째 대학원생들과 함께 서울대학교 교정에 서식하는 까치들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장기적인 생태 연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고 몇백 년이고 계속할 계획으로 시작한 연구다. 

이 연구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까치의 언어다. 새들의 음성신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주로 참새목에 속하는 새들의 ‘노래’를 분석해왔다. 그러나 그런 새들의 노래는 봄이 되어 해가 길어지고 기온이 오르면 거의 자동적으로 부르는, 즉 저절로 흘러나오는 녹음기의 소리와 같은 것이다. 또 모든 노래새 수컷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한결같이 사랑의 세레나데다. 종달새도 휘파람새도 분명히 다른 노래를 부르지만 내용은 어김없이 ‘나와 결혼해주오’일 뿐이다. 그에 비하면 비록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앵무새, 까마귀, 그리고 까치의 음성신호에는 여러 다른 의미들이 담겨 있다. 

까치의 소리를 녹음하여 분석하는 과정에서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이 자주 음자리의 수를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서로 화답하는 까치 두 마리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여보라. 한 마리가 ‘깍깍’ 하면 또 한 마리가 ‘깍깍깍’ 하고 또 ‘깍깍깍깍’ 하며 답하면 이번에 ‘깍깍’으로 응수한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숫자들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으나 아직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재간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난수표처럼 나열되어 있는 수들의 의미를 찾아낼 날이 올 것이다. 

MIT 대학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수학은 인간의 나고난 권리“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 이미 간단한 계산을 할 수 있도록 신경회로망을 갖추고 있다. 커가며 얼마나 적절한 수학적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서 좀더 복잡한 회로망이 만들어진다. 한창 복잡한 회로망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모두 계산만 한다. 그러니 기껏해야 그저 쓸 만한 계산기가 될 뿐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생각하는 컴퓨터는 되지 못한다. 왜 그렇게 풀어야 하는지는 모른 채 그저 어떻게 푸는 것인지 얄팍한 기술만 배운다. 

누군가 내게 우리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가장 막강한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언어와 수학 능력이라고 답할 것이다. 수학은 여러 자연과학분야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분야들까지 통틀어 모든 학문의 주춧돌이다. 수학은 그야말로 외계인도 알아듣는 우주공용어다. 이 첨단과학시대에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수학을 홀대하는 우리 사회의 어리석음에 그저 말문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