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다윈은 이제 현대인의 필수교양이다

이춘아 2023. 8. 2. 06:28

최재천, [다윈의 사도들], 사이언스북스, 2023.

(20~23쪽)

이 책은 2009년 ‘다윈의 해’에 기획되었다. 일찍이 나는 2005년 국내에서 다윈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불러 모아 다윈 포럼을 만들었다. 다윈의 해를 준비하며 다윈 포럼은 무엇보다도 먼저 다윈의 저서들을 번역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는 2009년에 즈음해 다윈의 3부작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그보다 무려 10년이 더 흐른 2019년에야 겨우 [종의 기원]을, 2020년에는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내놓게 되었다. 나머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정작 2009년 다윈의 해를 맞자 마치 ‘다윈 후진국’의 오명을 씻으려는 듯 우리나라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와 방송이 경쟁적으로 특집을 기획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다윈은 미래다’라는 [한국일보]특집 덕택에 탄생했다. 원래 기획은 우리 시대 대표 다윈주의자 다섯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인터뷰마다 신문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하는 파격적인 기획이었지만 처음부터 책을 염두에 둔 나는 다섯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틈틈이 다른 탁월한 다윈주의자들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공교롭게도 그랜트 부부를 일심동체로 간주하면 모두 열둘을 만났다. 이 책은 다윈의 열두 제자들의 어록이다. 

대담은 모두 2009년에 진행했지만 방대한 녹취록을 정리하고 다듬는 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미리 정해진 질문을 주고 준비된 답변을 받아 적은 게 아니라 가능한 한 자유롭게 나눈 대화이다 보니 종종 문맥에서 벗어난 주제들이 튀어나온 바람에 만남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진의를 확인하고 가다듬느라 훌쩍 10년이 흐르고 말았다. 

다윈 포럼은 내게 번역 작업을 총괄하는 것과 더불어 다윈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을 쓰라고 주문했다. 나는 네이버에 [최재천 교수의 다윈 2.0]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을 묶어 2012년 [다윈 지능]이라는 책을 냈고 2022년 10년 만에 개정 증보판이라고 할 2판을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5권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그보다 거의 10년 전인 2013년 나는 어떤 의미로는 자연 선택 이론보다 진화적 변화에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성 선택(sexual selection) 메커니즘을 설명한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를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대화 속에 회자되는 다윈의 이론과 사상에 관해 보다 상세히 알고 싶으면 손쉽게 들춰 볼 만한 책들이다. 

BTS의 아미는 열심히 BTS의 노래를 들으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철학을 세상에 널리 전파한다. 다윈의 아미 역시 단순히 다윈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윈의 가르침을 스스로 체화한 다음 제가끔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 적극적으로 전파한다. 나는 이 대담 기획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프린스턴 대학교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교수 부부를 찾아갔다. 나는 만일 다윈이 부활해 돌아온다면 가장 먼저 찾아갈 다윈주의자가 그랜트 교수 부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다윈의 이론을 가장 확실하게 검증해낸 학자들이다. 그런 다음으로는 [개미와 공작]이라는 책으로 다윈의 양대 이론의 태동 배경을 맛깔스럽게 정리한 과학 철학자 헬레나 크로닌을 필두로 현재 다윈의 아미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윈주의자들인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스티브 존스, 매트 리들리, 마이클 셔머 등을 잇달아 만났다. 피터 크레인은 식물학자로서 다윈을 균형 있게 조명해주었고,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 열어젖힌 인지 과학과 영장류학에 관해서는 교토 대학교 마쓰자와 데스로 교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멘델 유전학이 ‘근대적 종합’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지금은 분자 유전학이 진화 생물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제임스 왓슨이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다윈주의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희열은 진정 소중했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다윈주의자들을 두루 만나고 나니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인간 다윈이 궁금해졌다. 과학사학자 재닛 브라운과 이 모든 구슬을 가지런히 꿰어 보았다. 

다윈의 열두 제자들과 함께한 동행은 나름 평생 다윈을 하며 살았다고 자부하는 내게 잊을 수 없이 귀한 배움을 선사했다.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경험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다윈의 열두 제자들을 차례로 만나다 보면 어느덧 그들의 손에 이끌려 다윈의 아미에 입적하게 될 것이다. 그런 변화에 애써 항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 세기 반에 걸친 혹독한 담금질과 막강한 아미의 팬덤 문화덕택에 다윈의 이론은 이제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학문과 사회 활동 분야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다윈은 이제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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