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김종철 번역), 녹색평론사, 2011(2007년 초판).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는 한 미국인 지식인이 궁극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근대세계의 어둠을 뚫고 걸어간 오디세우스적 여행의 궤적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의 여행은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 인도 등등 세계 각지에 걸쳐 이루어지지만, 그는 그 자신의 인생행로의 어떤 지점에서도 단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진정으로 ’좋은 삶‘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를 찾아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오늘날 자본과 국가의 압도적인 논리에 갇혀 있는 근대적 세계는 개인으로 하여금 참된 의미에서의 ’좋은 삶‘, 다시 말하여 ’덕행의 습관적인 실천‘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체제이다. 지금 우리는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누구나 ’자기몰두‘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 없이 ’경계인간‘으로 전락하여, 기껏해야 소비자 혹은 관광객으로서의 삶이라는 극히 천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호이나키는 우리 시대가 참으로 ’기묘한‘ 시대라고 말한다.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빈곤과 전쟁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보‘의 프로젝트들에 의해서 안락과 편의성이 증대하면 할수록 인간은 제도와 기술과 전문가의 노예가 되고 마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진실로 인간답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 다시 말하여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온 자기회생의 정신과 타자에의 능동적인 환대와 같은 오랜 세월 인류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적인 덕행은 극히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호이나키라고 해서 이 상황을 타개할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이 자라고, 교육받고 살아온 서양의 정신적 전통 -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아퀴나스를 거쳐 전승되어온 서양의 오래된 윤리적 종교적 전통으로 되돌아가,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전체로서 하나의 목적을 가진 뜻있는 이야기로서 파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문하고 자기성찰을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근대세계란 삶의 근원적인 무의미성을 부추기는 체제이다. 그러나 호이나키의 이야기는 그러한 불모의 세계 한가운데서도 우리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망가지지 않고 지극히 겸허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에게도 ’품위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 전체의 밑바닥을 관류하고 있는 이미지 - ’거룩한 바보‘야말로 궁극적인 희망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거룩한 바보‘는 따지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된 사회라면 어디에서든 존재해온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어떠한 형태로든 ’거룩한 바보‘에 의한 저항이 계속되어 오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크든 작든 체제에 순응하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거룩한 바보‘의 예들을 풍부히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 아마 이것이 호이나키라는 한 탁월한 이야기꾼의 결론인 듯하다.
2007년 10월
역자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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