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분단체제의 그물

이춘아 2024. 1. 23. 16:39

황석영, [수인 1], 문학동네, 2017.


(39~44쪽)

윤이상의 방북 이유 중 다른 하나는 고구려 벽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일본의 어느 출판사에서 만주와 북한에 있던 고구려 고분벽화를 선명한 컬러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윤이상은 서구의 현대음악이 과거의 형식적 틀을 해체하면서 동양의 음악과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우리 국악, 민속악, 무악, 5음계의 가락과 장단과 즉흥성을 도입해서 서양음악이 얻을 수 없던 새로운 세계를 확보해나갔다. 그가 고구려 벽화 사신도를 사진으로 보면서 느꼈던 감동은 바로 마음속에 음률이 되어 떠올랐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동물들은 세상의 동물들을 상상에 의한 베리에이션으로 재창조해냈고, 그것들을 묘사한 유연한 선들을 춤추고 날아다니는 동작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친구 김순남을 만나고 싶었고 우리 민족의 고대 벽화를 보고 싶었다는, 그래서 방북하기로 했다는 노예술가의 말을 나는 너무도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뒤에 외형적으로 개방된 듯이 보이는 현재의 한국 사회와는 달리, 당시에 남한 사람은 섬처럼 분단된 반도의 남쪽에 갇혀 살아야 했고 외국에 체류하는 날부터 공황장애 비슷한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외로움이나 향수 때문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이국땅의 자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넘쳐나는 자유는 그를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더구나 지식인의 경우에는 이런 느낌 자체가 일종의 모멸감이나 패배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한반도를 의식 속에서 벗어나기로 하면서 거리마다 활보하는 유럽시민과 자신을 동일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폐쇄된 반공국가의 한계 상황 따위는 우스갯소리처럼 잊어버린다. 따라서 사리 분별 있고 세상 물정을 아는 지식인이 조잡하고 빤한 북한 출판물을 보고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북한을 몰래 방문했던 사람들은 온갖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당하고, 북과 관련있는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십여 년 이상의 장기형을 받는 게 이 땅의 현실이었음에도 말이다. 재일동포나 전쟁 때 부역의 혐의가 있는 사람의 가족들, 또는 고기를 잡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로한계선을 넘어가는 바람에 북에 억류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 아니면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편을 술취해서 떠벌리다, ‘막걸리 반공법’에 걸린 사람들 등등. 얼토당토않게 조작되어 장기간 수형생활 끝에 근년에 와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여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지만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고통받으며 잃어버린 세월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은 독일에서 북한을 다녀온 어느 유학생이 귀국해서 자수하는 바람에 조직사건처럼 엮이게 된 것이었다. 한국의 요원들은 은밀한 내사를 통해 명단을 입수하고 나서 어떤 이는 약속장소에서 그대로 대사관으로 연행하고 또 어떤 이는 집을 방문해서 8.15 광복절 정부 행사에 초청되었다고 속여서 동행 귀국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부정선거 후유증으로 야당과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어 골머리를 앓던 터라 이 사건은 그야말로 때를 맞춘 호재였다. 사실 한국 정부가 타국에서 벌인 과감한 체포작전은 아무리 냉전시대라 할지라도 유럽 시민사회의 상식으로 본다면 매우 무모한 행동이었다. 곧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물론이고 전 유럽의 시민사회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유럽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항의와 석방 운동에 기꺼이 동참했다. 사형과 무기징역 등의 중형을 선고받았던 윤이상, 이응로를 비롯한 서른네 명의 인사들은 몇 년씩의 형기를 치르고 나서 그들이 체류했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국에 남은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연루되어 오랫동안 사실상 공민권을 제한받은 채로 군사독재시대를 살아가야 했고, 유럽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반한 인사’로 낙인찍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쓸쓸히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것은, 당시 사건을 지휘했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과 불화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뒤 자신이 반한 인사가 되어 군사정부의 내막을 폭로하는 회고록을 써서 그 원고를 가지고 흥정하다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이다. 신군부의 계엄령 시절,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의 부하들과 남한산성 군감옥에 같이 수감되어있던 민주화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김형욱이 파리에서 비밀리에 본국으로 납치되어 부마항쟁이 일어나던 무렵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당시에 독일 현지에서 윤이상 등의 체포를 도왔던 장군 출신 대사 최덕신 역시 대통령과 불화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북한으로 가서 천도교 지도자로 식객처럼 머물다 사망했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고 하잘것없이 버려졌다. 우리가 아는 몇몇 사람들의 운명을 잠깐 살펴보더라도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것이 지금도 숙명처럼 우리를 얽어맨 분단체제의 그물이다. 

윤이상 선생은 나와 헤어지기 전에 다시 말했다. “나를 만나러 와주어서 고맙소. 누구든지 한국 사람이 나를 만나면 나중에 문책당하고 시끄러워져서 모두 전화도 못하고 안부만 전하고 가거든.”

그 이튿날인가 윤이상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윤선생과 약속된 레스토랑에 나가보니 옆에 독일인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소설가 루이제 린저였다. 당시에 윤이상이 육십대 말이고 루이제 린저가 그보다 여섯 살 위였으니 그녀는 칠십대 중반의 나이였을 것이다. 호기심에 빛나는 두 눈은 장난꾸러기 같았고 굳게 다문 입과 도톰한 볼은 의자가 굳으면서도 완강한 고집을 지닌 인물로 보이게 했다. 물론 나는 독일 현대문학을 통해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이미 1960년대 초반에 그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 작품을 번역한 전혜린은 뮌헨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번역가와 에세이스트로 활약하다가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자살해서 이 소설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루이제 린저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 세계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김대중 납치와 김지하의 투옥 사건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1975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대한 그녀의 인상기는 1980년에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 쓴 기행문에 비하면 매우 고약한 것이었다. 아직도 한국의 극우보수측은 루이제 린저를 김일성과 북한의 앞잡이쯤으로 여기지만 그녀 역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아니, 공산주의자이기는커녕 생태주의자로서 독일 녹색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다. 한국인들에게는 불쾌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북한 방문기 [또하나의 조국]은 오랫동안 한국에선 출판되지 못하다가 나중에 출판된 뒤에도 시장에서 사라져버려 연구자들 사이에서나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나는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연구자들이 발췌해놓은 부분들을 일별한 적은 있다. 

그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무렵은 박정희가 1972년 종신집권체제인 유신을 선포한 데 이어 1974년 긴급조치를 발령해서 이에 반대하는 학생, 재야인사들을 체포 구속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던 때였다.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여 시인 김지하 등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했으며 대학에는 무기한 휴교령을 내렸고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관련자 여덟 명을 사형 집행했다. 전 세계는 이를 ’사법 살인‘이라고 규탄했다. 이때부터 많은 책들이 검열에 걸려 판금되었고 문학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잃었다. 유신에 반대하는 문인들을 억압하기 위하여 당국은 ’문인간첩단‘ 사건을 날조했다. 내가 동료 문인들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조직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니 그러한 때에 방한한 루이제 린저의 한국 인상기가 호의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루이제 린저는 당국에서 붙인 기관원을 따돌리고 많은 재야인사들을 만났다. 특히 투옥된 김지하의 구명을 위해 시위에 참가하고 연행당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을 만나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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