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전혜린 옮김), 문예출판사, 2018(1967년 초판).
50: 그날 밤 얘기를 더 하겠어 이제는. 나는 누워서 기다렸어. 나는 죽음, 아니, 죽고 난 후를 기다리고 있었어. 처음에는 나는 행복했어. 그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그 다음에 온 생각들은 나를 불안케 만들었어. 나는 생이 앞으로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굉장한 앞날이 있을지 누가 알아? 어쩌면 나에게는 큰 재능이 있어서 유명해질지도 누가 알아? 또는 훌륭한 남자를 알게 되어서 결혼할지도 모르고 유혹은 한 개 한 개씩 나에게 다가왔어. 그것은 생의 환상이었고 전부 유혹에 넘친 광경이었어. 아침 햇빛 속에 꽃밭과 강이 있었고 나는 대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었어. 부활절이었어. 나는 늘 몹시도 갖고 싶어 하고 한 번도 사 입지 못한 봄 투피스를 입고 팔엔 보랏빛과 노랑빛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환상이었으니까 뭐. 또 나는 무대 위에서 캐첸([하일브론의 캐첸], H.클라이스트 작)역을 연기했어. 그 당시는 배우가 되는 것이 내 이상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담배 냄새를 맡았어. 담배 피우는 걸 나는 그 당시 멋의 상징같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해서 생은 나를 완전히 바보같은 환상들을 가지고 유혹하려고 했어. 나는 매우 불안해지고 당황했어. 그러나 그 다음에는 내가 꿈꾸었던 환상이, 자유의 환상이 다시 나타나서 나는 다시 아주 고요해졌어.
그러나 나는 죽기를 바랄 용기가 없었어. 나는 그저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내가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어. 나는 아주 가벼웠어. 새털같이 가벼워졌어. 어쩌면 슈타인이 나에게 아편을 주었던 것인지도 몰라.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죽음의 시각처럼 보였어. 그러고는 점점 맑아졌고 낮이 왔을 때 나는 아직 살고 있었어.
생 가운데 다시 내던져졌어. 나는 몹시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었어. 위대할 기회가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그때 나는 울었어. 유리창에 기대서서. 창문은 열려 있었고 밝은 이른 아침이었어. 나는 슈타인이 서 있는 걸 보았어야 할 텐데 보지 못했어. 가을 낙엽의 냄새가 났고 나는 울었어. 몹시 슬픈 아침이었어.
조금 있다가 슈타인이 왔을 때 나는 모든 잘못은 그 때문이라는듯이 그에 대해서 성이 나 있었어. 그러고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잠잤어. 그 다음부터 회복되기 시작했어. 회복은 매우 느렸어. 나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 아마 슈타인의 장서의 절반은 읽었을 거야. 그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갖다 주었어. 내가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을 더 자주 갖다 주었으나 나는 그가 갖다 주는 것은 무턱대고 다 읽었어. 이런 방법으로 나는 무섭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 나는 마치 귀신 붙은 것같이 열심히 배웠어. 죽음이 나를 가져가려 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나는 생의 편으로 돌아섰던거야. 그런데 산다는 건 그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는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모든 것과 파고드는 것이었어.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66: 내가 읽는 것을 니나가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뭘 생각하니? 라고 나는 물었다. 니나가 약간 몸서리를 치는 것을 보고 나는 니나의 생각이 얼마나 먼 곳에 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우수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어, 라고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갖 아름다움이 다 부정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고 다만 몇시간 동안의 짧은 기한으로 빌려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번 알아차린 사람, 또 우리가 여기에 나무와 극장과 신문의 한가운데에서도 마치 불모지인 달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안 사람도 물론 누구나 다 우수에 잠길 것이야.
니나, 라고 나는 불렀다. 그게 무슨 말이니? 나는 네가 사는 것을 기뻐하는 줄 알았는데? 너는 생을 사랑하지 않니 네 자신이 그렇게 말했잖아?
물론 그래, 라고 니나는 대답했다. 우수는 다만 인식의 시초일 뿐이야.
갑자기 니나는 웃었다. 내가 무슨 현명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물론 나는 기쁘게 살고 있어, 라고 니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들의 눈만 보아도 그걸 알 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는 우수는 다만 표면에만 떠 있고 꾸민 의도와 감상주의를 나타낼 뿐이야. 정말로 우울한 눈의 위층은 활기와 주의력 또는 바쁜 빛을 띠고 있어. 그러나 그것은 다만 포장에 불과해. 그 뒤에는 무대가 있는데 그것은 보통 때는 보이지 않지만 때때로 포장이 들춰지면 그 뒤의 어둠속에 아무 희망도 분격도 없이 한 남자가 앓고 있고 누가 그에게 가서 그를 더 정다운 세계로 데려가려 하면 그것을 의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꺼야. 그는 더 정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는 이미 그의 우울에 의해서 마비되어 있는 것이야. 그는 우리를 보고 웃고 마치 우리의 말을 믿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와 같이 가기 위해서 일어서지는 않아.
니나는 나에게 조사하는 것같은 수줍은 시선을 던졌다. 나는 니나가 사랑하는 남자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70: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어떤 설명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야 아마 사실은 정반대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어떻게 남을 알 수가 있단 말이야! 우리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조차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리고 우리가 알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몰라지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괭이처럼 사는 것을 배우게 돼. 점점 더 소리없이, 점점 더 필연성 없이 - 그건이 늙은 징조야. 나는 늙어가는 것이 기뻐.
71: 웃지 말아, 라고 니나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든지 의욕을 갖기를 그치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얼마 전까지도 나는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났어. 나는 마치 아침마다 문간에 서서 코를 바람 속에서 벌름거리면서 사냥에의 욕망으로 떠는 사냥개와도 같았어. 그런데 지금은 나는 이미 나 자신에게 있어서 조금도 의외의 무엇을 갖고 있지 않아. 그리고 인생은 끝없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네 개의 벽이 있는 공간이야.
79: 언니도 이런 경험이 있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과 아주 달라진 것을 발견하는 일이? 갑자기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글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달라진 경험이 있어? 다른 사람은 보아도 모르지만 우리 자신은 잘 알고 있는 변화인 것이야. 우리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또 전연 다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돼. 우리는 변신할 수 있고 자기 자신과 유희할 수 있어. 책을 읽었을 때 우리는 책 속에 있는 이 사람 또는 저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돼. 그리고 다음 책을 읽었을 때는 또 다른 모습과 같은 걸 알게 돼. 이렇게 끝없이 계속되곤 해. 사람은 몸을 굽히고 자기 자신 속을 들여다보면 몇 백개의 나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도 참 자기가 아니야. 아마 그 몇백 개를 다 합치면 정말 자기일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적어도 믿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이 수많은 자기 중에서 다만 하나만, 미리 정해진 특정의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야.
언니는 여태까지 그처럼 많은 것을 삶에서 이루었고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잖아. 이루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언니도 모범적이잖아. 나는 언니에 대해 감탄하고 있어.
니나는 나를 몹시 당황시켰다.
아니냐, 라고 말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말에 놀랐다. 아무것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 그렇지만 그 말은 그만두자. 내 생각으로는 네가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너는 너의 수많은 자기 중의 한 개에 너를 고정시키지 않았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야.
아, 바로 그래서 문제인 거야, 라고 니나가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