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32 - 뉴욕 스케치
June 13, 2000
이춘아
아이의 여름방학을 맞아 뉴욕과 보스톤을 다녀왔습니다. 숙소는 뉴욕 중심지인 맨하턴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뉴저지의 메디슨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메디슨은 인구 3만여명으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드류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한국의 유명 신학자들 가운데 이 학교출신이 많아 신학대학인줄 알았습니다만 일반대학안에 신학과가 있더군요. 현재도 한국유학생들이 60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방학을 맞아 한적한 교정에 오가는 동양인들이 거개 한국인들일 정도입니다.
도착 첫날 저녁 기차를 타고 맨하턴의 밤거리를 쏘다녔습니다. 이상기온으로 며칠전 폭풍우가 오고난후 갑자기 추워져 모두들 긴팔입니다만 우리만 반팔옷에 덜덜 떨며 다녔습니다. 한국인 상가들이 밀집된 곳이 나타나자 모처럼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한국글씨의 간판들에 추위를 잊어버리기도 했지요. 우리집 아이와 합창을 하며 간판들을 읽었습니다. 여행사, 은행, 부동산, 식당, 수퍼, 금은방, 철학원, 핸드폰으로 떠들며 다니는 한국인들 명동거리가 따로 없더군요.
지난 미국통신31호의 Korean American을 썼던 한국교민의 수가 피부로 와닿는 듯 했습니다. 그 글은 십여년전의 통계자료를 토대로 쓴 글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책상앞에 앉아 기입하는 숫자와는 달리 현장에서 접하는 느낌은 그 숫자를 크게 보이게 합니다. 하나, 둘 헤아리다가 셋이상이면 ‘많다’ 라고 하지요.
교과서적으로 알고 있는 뉴욕은 인종전시장, 앰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압축되는 고층빌딩 등이었는데 실제 보고 듣는 느낌은 숫자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입니다.
영화속에서 보았던 맨하턴 브로드웨이를 걸어봅니다. 켓츠, 라이온킹 등의 뮤지컬 광고, 금성과 삼성의 네온사인 광고 자막. 지난 연말 새해를 맞이하는 뉴욕의 장면에서 빛나게 보여던 한국회사의 광고판이 진짜 거기 있더군요.
나아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려는 사람에게 누가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거기 가봤자 물밖에 없어, 뉴욕 맨하턴에 간다고 했더니 서울거리하고 똑같아 하더랍니다.
보스턴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맨하턴 쪽을 피하여 뒷길로 간다는 것이 그만 표지판을 잘못 보아 저녁 6시 맨하턴의 거리를 지나가게 됐습니다. 뉴욕을 벗어나오면서 남편이 하는 말이 영등포를 빠져나온 것 같다고 중얼거립니다.
뉴욕 도착 다음날 숙소에서 아이와 둘이 기차를 타고 맨하턴으로 갑니다. 역풍경은 한국의 시골역 풍경과 유사합니다만 역마다 가득 주차해 놓은 차들이 이색적입니다.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한달전 빌려본 비디오가 생각나더군요. 매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니로가 나온 폴링러브입니다. 기차로 오가면서 만난 기혼남녀들이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이지만 그 배경이 바로 내가 탄 기차와 바깥 풍경들이 되다보니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영화속에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차안에 세명이 앉는 좌석과 두명이 앉는 좌석이 있었는데 세명 앉는 좌석가운데 통로쪽의 좌석 하나는 머리를 기댈 부분이 없어 아마도 간이좌석을 두었나보다 했지요. 그랬는데 실제 타보니 간이좌석이 아니라 통로쪽의 편이를 위해 만든 높이가 다른 좌석이었습니다.
영화의 주제와는 정말 아무 상관없는 장면이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난 것은 특이하게 기억을 하였다가 이렇게 궁금증을 풀어가는 그런 우연이 더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맨하턴 팬스테이션 기차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맨하턴의 북동쪽에 위치한 박물관 밀집지역으로 갑니다. 동쪽86가역에서 내려 센트럴 파크쪽으로 걸어갑니다. 이 곳 역시 고층건물입니다만 브로드웨이 극장가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우선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북부지역의 학생들의 단체관람으로 북적입니다.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 다른 곳을 옮겼습니다. 바로 위에 스미소니언의 지부이기도 한 쿠퍼-헤위트 내쇼날 디자인 뮤지엄입니다. 마침 이곳의 무료입장권을 갖고 있었고 11세 이하는 무료이기에 아이와 나는 흡족해하며 들어갔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한 디자인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용품에 대한 디자인전이라 아이도 관심을 갖고 봅니다. 무척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워싱톤의 국립미술관 구경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가 뭐라고 중얼거릴길래 들어보니 ‘저질’이라는 것입니다. 벗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11세의 아이 눈에 비친 소위 명화들이 죄다 저질입니다.
저질에서 명화로 넘어가는 단계가 언제쯤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려서 배운 도덕적인 가치와 벗은 그림의 미적 가치와의 간격은 너무나 컸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이 아름답게 느껴진 때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려서 목욕탕을 함께 다니고 남녀를 구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의 몸은 부끄러움으로 변하고 쳐다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되 탐하게 되는 그런 시기가 오면 우리 아이 말마따나 벗은 몸은 저질로 변하며 저질에 대한 호기심과 죄악의 이중성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워싱톤의 국립미술관에서 지루해 하던 아이를 달래면서 끝까지 구경했던 나의 작전은 이러했습니다. 벗은 그림이 나타날 때 마다 아이와 동시에 ‘저질’이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왠 저질이 그렇게 많은지 나도 놀랬답니다.
디자인전을 보고 난후 몇블럭 아래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향했습니다. 이왕이면 센트럴 파크를 지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공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처럼의 햇볕에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하는 사람, 웃통을 벗고 뛰는 사람들, 우리집 아이가 한마디 하지요. 공원에서 저래도 되냐고. 미국은 그렇다고 할수 밖에요. 센트럴 파크는 사람들이 즐기는 공원인 것 같았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야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이곳 저곳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공원도 뉴욕답게 시끌벅적 하더군요. 내쉬빌의 공원은 사람들이 적어 무서울 정도인데.
공원 구경에 길을 잃고 헤메다 드디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올라가는 입구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으로 워싱톤의 스미소니언 산하의 미술관 몇 개를 모아놓은 곳 같습니다. 스미소니언이 분야별로 나뉘어져 있는 미술관으로 구성되었다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들을 종합한 형태입니다. 밥을 든든히 먹고 편한 신발로 구경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워싱톤의 각종 박물관들이 거의 무료라면 뉴욕은 대부분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박물관, 미술관을 집중적으로 구경하기 위해 뉴욕과 워싱톤 둘중에 어느 한곳만을 택해야 한다면 단연 워싱톤을 권하고 싶습니다. 워싱톤을 다녀올 때는 몰랐는데 뉴욕을 다녀오니까 워싱톤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남부의 조용한 내쉬빌에 살다가 워싱톤, 뉴욕 등지의 대도시를 다녀오면 다시는 복잡한 곳을 찾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내쉬빌은 정말 구경할 것이 없어 하는 생각이 들때면 대도시의 구경거리 많은 곳이 생각나지요. 그러다 막상 다녀올 때는 도망쳐오듯 다시는 그런 곳에 발딛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이 교차하는 순간들.
서울같은 대도시는 지겨워 지겨워하면서도 사람을 붙잡는 뭔가가 있는 곳입니다. 텍사스의 한 교민의 말이 생각납니다. 텍사스 근교에서 자란 아이가 첼로전공으로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학교로 가더니 한 2년동안은 뉴욕은 살 곳이 못된다고 다시 돌아오고 싶어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더니 졸업하고도 돌아오지 않고 뉴욕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텍사스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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