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33 - 하바드에 관하여
June 20, 2000
이춘아
하바드에 관하여 무수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나에게 하바드는 우선 텔레비전에서 본 ‘하바드의 공부벌레’ 아니 그 이전에 나온 영화 ‘러브 스토리’로 굳게 인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의 인생 기본 줄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이미지로 끼친 영향력 이외에 하바드는 모든 면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간이 갈 수 있는 대학의 한 이름이고 이는 막강한 파워로 연결되어 강요없이도 막연한 존경을 갖게 되는 그러한 단어였습니다.
누가 하바드에 갔다더라 하면 우선 부모를 위시하여 집안의 명예가 올라가는 전설같은 영향력. 시카고에서 사셨던 분이 한 말씀입니다. 한국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시카고에는 입시철이 되어 어느 집에 아무개가 하바드 갔다는 소문이 나도는 한 며칠동안은 아이들이 살맛을 잃어버리는 때라고 합니다. 아무개는 하바드 갔다는데 너는 뭐하는 인간이냐에서부터 내가 이민와서 하는 고생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로 이어지는 각종의 한탄이 아이들에게 퍼부어진다고 합니다.
뉴욕, 뉴저지의 한국교민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바드를 보내려는 부모들의 지극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으로 하바드까지는 보냈으나 하바드에 들어가서 학교를 그만 두는 사태들이 목격되고 있어 교민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언어는 물론 체력에서 딸린다는 소리는 유학생들을 통해서도 많이 들은 소리입니다만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2세들조차도 언어에서 딸린다는 것입니다. 입시위주로 훈련되어온 아이들이 입학은 했으되 대학에서 주어지는 과제물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중도포기를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테네시 내쉬빌에는 밴더빌트라는 유명 사학이 있어 이 대학은 ‘남부의 하바드’라고 불리는데 이 대학에 올해 내쉬빌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석졸업한 한국계 여학생이 입학하여 축하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북부로 올라가니까 밴더빌트는 물론 명함도 못내밀 형편입니다. 진짜 하바드 만이 대학의 상징이고 그외는 그저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서울대학이 갖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교육에 철천지 한을 품으며 매달려 있는 것일까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옵니다만 현실은 미국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거의 막노동에 가까운 이민생활에서 자녀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켜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좋은 대학 나와 안정되고 인정받는 직업을 갖는 것입니다. 교수직은 미국에서도 별볼일 없는 보수입니다만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초봉만도 평균임금의 서너배는 넘는다고 하니까요.
드디어 뉴욕을 벗어나 하바드가 있는 보스톤에 도착하고 보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해준 유학생은 우선 어두워지기전 월든 호수를 보여주고 난 다음 남편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한 보스톤 대학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남편으로서는 17년만에 다시 밟아보는 교정, 공부했던 건물과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자신이 자취하던 집을 찾아가 보길 원했습니다. 그 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했던 남편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하바드를 구경했습니다.
1636년에 만들어진 이래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하여 6명의 대통령이 배출된 곳, 400여개의 학교건물을 가진 대규모의 관광단지이기도 한 하바드의 중심부를 우리가 찾아갔을 때 교정 잔디밭은 졸업식 행사를 위해 간의용 의자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몇천개는 족히 될듯한 그 의자 중 하나에 앉아 봅니다. 졸업식장의 이 자리는 초대받은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곳입니다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우리가 앉아 하바드의 명성을 느껴봅니다. 의자에 우리 집 아이를 앉히고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이 사진 한 컷에 담긴 엄청난 담론은 이러합니다. 니가 언제 이런데 한번 앉아 보겠니, 잘 되면 너도 앉을 수 있다, 그 덕에 나도 이 의자에 한번 앉아보자...
안내해준 유학생이 우리 집아이에게 하바드의 명성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해 줍니다. 그러자 드루(Drew) 대학의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있었던 아이는 하바드 마크가 있는 옷으로 바꿔달라고 성화입니다. 다행히도 너무 늦은 저녁이라 옷파는 곳이 없어 사지 못했습니다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요. 한국에 가면 하바드 옷 천지다.
하바드는 하바드의 로고만으로도 경제적 상품가치를 발휘하고 있는 셈입니다. 챨스 강을 사이에 두고 명문대학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MIT도 그 옆에 있더군요. 이들 학교를 거쳐간 유학생들이 한국의 각 부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이런 장면이 떠오릅니다. 연말이면 미국 모 대학 동문회를 했다고 아무개 아무개 등이 참여한 행사위주의 사진들이 일간지에 실리곤 하지요. 나는 이런 사진들이 왜 일간신문에 크게 나오는지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오니까 한인신문에 한국대학 출신 동문회 사진이 크게 실리더군요. 대학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동차로 복잡한 보스톤 시내로 들어갑니다. 안내자가 저 곳이 보스톤 심포니와 보스톤 팝스라고 소개해 줍니다. 보스톤 심포니와 팝스는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심포니와 팝스가 자체 연주홀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자체 연주홀에서 일년 내내 연주할 수 있으니 유명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주차하기 힘들어 내려 구경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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