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34 - 마녀사냥
June 22, 2000
이춘아
보스톤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후 Salem이란 곳을 갔습니다. ‘살렘’이라 불리워진 양담배의 활자가 기억났는데 ‘세일럼’이라 발음하고 있네요. Salem이라는 지명은 미국 여기저기에 있습니다만 마녀재판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세일럼은 보스톤에서 북동쪽으로 약 25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중의 하나입니다. 일정에 쫓겨 세일럼을 구경할 계획은 없었으나 숙박지에서 구입한 세일럼에 관한 팜플렛을 읽어보니 한번 가보고 싶어 지나가기만이라도 해보자 하여 들어섰습니다.
잘 만든 팜플렛에서도 풍겨났듯이 세일럼은 도시자체가 관광지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오전 9시도 되기전인데도 마녀박물관은 비오는 음산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견학온 학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마녀사냥이라는 기이한 인간의 역사와는 별개로 아이들은 마녀라든지 마법사 이야기를 좋아하여 마치 빗자루타고 날아다니는 마녀가 이 마을에 살았다는 환상을 갖습니다. 박물관안의 상품가게에 아이들에게 베스트셀러였던 [해리포터]시리즈가 비치되어 있길래 왠? 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해리 포터 역시 마녀와 연결된 도서상품이기 때문인가보다 했습니다.
세일럼에는 대표적인 마녀박물관이외에도 마녀감옥박물관, 마녀역사박물관, 마녀마을을 만들어 ‘마녀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녀재판에 가담한 조나단 코윈이라는 판사의 집을 마녀의 집이라 이름 붙여 관광지로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1626년 경부터 영국에서온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그들의 생계를 바다에 의지했던 곳인 세일럼은 18, 19세기초 아프리카,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등과의 무역으로 번성했던 항구도시입니다. 아직 항구도시로 정착되기전인 1692년 이 세일럼 마을에 마녀를 색출해내는 움직임은 거의 광란(hysteria라고 쓰고 있습니다)에 가까와서 남녀 어린이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고한 150여명이 마법재판에 회부되어 결국 19명이 교수형을 받게 되며, 재판에 회부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상을 일으켜 비참한 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처형자 명단 가운데 남자 이름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중세기 유럽 광란의 도가니로 휩쓸었던 마녀사냥으로 십만여명이 희생되었던 그 역사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도 재현되었던 것입니다.
세일럼에서 일어난 사건의 발단은 이러합니다. 1692년 1월 마을의 목사였던 사뮤엘 패리스라는 목사의 딸과 조카가 병에 걸렸습니다. 이들의 병세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 마을의 의사였던 윌리암 그릭스는 이런 병이 돌게 된 것이 마을에 마녀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술적인 진단을 내리게 되면서였다고 합니다.
3백여년전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면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마녀박물관 선물가게에서 사온 [The Witchcraft Hysteria of 1692] 소책자를 자세하게 읽어봅니다.
패리스 목사의 딸과 조카는 단순한 병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의 가정부였던 Tituba라는 여성은 인디안 노예로서 자신은 마녀였고 신비한 마법도 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자 아이들은 이에 혹하여 이웃집 아이들도 불러 그야말로 마법놀이를 하던 과정에 정말 이 아이들이 최면상태에 들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겼던 패리스 목사는 의사인 그릭스에게 의뢰하나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릭스는 악령에 홀려서 그런 것이라고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자 패리스 목사는 인근의 목사들을 소집하여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마귀를 물러치기위해 애씁니다만 그래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패리스 목사는 아이들에게 마법을 시도했던 가정부 Tituba, 동네에서 인정도 못받고 예배에도 잘 참석하지 않던 Sarah Good, Sarah Osborne이라는 여성을 고소하게 됩니다.
이들 여성을 고소하여 재판하는 과정에서 더 희한한 일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던 그들에 대해 증인들, 이웃, 심지어는 그들의 남편까지도 자신의 부인이 자신에게 심하게 대했다는 등의 증언을 하게 되며, 재판과정 내내 하나님(God)이란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 교회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등등 소문이 증폭됩니다. 결국 이들 세 명중 Sarah Osborne은 감옥에서 병들어 죽고, 임신중이던 Sarah Good은 옥중에서 아이를 낳은 후 교수형을 받습니다. 아이 역시 며칠 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가정부였던 Tituba는 재판과정에서 그리스도가 주님이라고 회개하자 교수형은 면하고 감옥에 있던 중 사건 종결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마녀재판 과정에서 광란이 증폭되면서 가장 먼저 교수형에 처한 사람은 Bridget Bishop이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두 번 결혼한 경력에 매력적이었으며 마을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말이 많았겠습니까. 더 희한한 일은 패리스 목사의 딸(9세)과 조카(11세)인 어린아이들이 재판증언에서 자신의 말한마디에 따라 세상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에 재미를 붙여 여러 여성들을 지목하게 되고 재판에 회부되는 과정이 벌어집니다.
마법재판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자 동네마다 종교적으로 세상 인심을 잃었던 여성들이 입심에 올라가 그들 역시 별다른 증거없이 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장에서 사라집니다. 재판결과 6월 10일부터 9월 22일 사이에 모두 19명의 사람들이 처형됩니다. 대부분 여성이름입니다.
몇 년후 광란이 진정되자 고소의 당사자였던 패리스 목사는 1697년 동네에서 쫓겨나 보스톤으로 옮겨 목회를 하다가 1720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세상 인심이 그렇습니다. 한때는 우상시되던 그들 가족들이 소용돌이가 멈춰 이성적인 판단으로 되돌아오면 그들을 다시 내칩니다.
우리에게 주홍글씨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나타니엘 호오손이 바로 이곳 출신입니다. 호오손은 1692년 당시 마법재판을 주재한 호오손(Hathorne) 판사가 그의 조상이었음을 부끄러워하여 자신의 이름에 w을 넣어 Hawthorne으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생각하니 1850년에 썼다는 주홍글씨 역시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마녀박물관에 시대별로 역사적인 기록을 정리하면서 이런 공식의 결론을 써 붙여 놓았길래 적어왔습니다. Fear + Trigger = Scapegoat
공포의 대상(사람, 이념, 질병 등 그 무엇이 되든)이 있을 때 세상은 그것을 증폭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속죄양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그 예가 일본+진주만 습격=일본계 미국인, 공산주의+매카시 선풍=블랙 리스트에 오른 미국인들, 감염+에이즈 발생=게이 집단(Gay community)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기입할 수 있는 예는 얼마든지 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대를 반복하여 잊을만 하면 언제든지 발생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종교적 속죄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