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35 – 미국놈
June 29, 2000
이춘아
미국에서 30여년 사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미국놈, 중국놈, 일본놈 이라 예사로 호칭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도 못하게 됐다고. 그 분은 중국계 미국인을 사위로 두신 분입니다.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사위 뿐 아니라 사돈의 팔촌 까지는 못가더라도 팔촌 범위가 다국적 인종을 구성되어 있더랍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놈’을 붙이기가 뭐하더라면서 우스개 소리를 하셨습니다. We are the world. 많이 들어본 노래제목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번 한인들의 이민역사가 오래된 뉴욕과 보스톤을 다녀오면서 그 분의 우스개가 진지하게 다가왔습니다. 뉴욕과 보슨톤에서 세 곳의 한인교회를 방문했었는데 우연히도 그 교회 모두 원래 미국교회이던 것을 인수하여 한인들의 예배처가 된 곳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뉴욕과 보스톤 사이에 있는 하트포드(Hartford)라는 지역에 있는 한인교회는 독일인들의 교회였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의 본격적인 미국이민 역사는 이삼백년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이민온 사람들 역시 오늘의 한인교회처럼 자신들의 언어로 모국의 음식맛을 나름대로 모여 즐기면서 혈연과 친분관계를 교회를 통해 유지해 왔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이민 2세, 3세대로 이어지면서 혼혈이 되고 또한 거대한 땅덩어리의 미국 곳곳으로 흩어지면서 독일인들의 정통성을 고수해온 교회 역시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노인 몇몇이 모이는 교회가 되자 굳이 독일교회를 유지할 명분도 사라져버렸겠지요. 백여년이 지나 미국의 한인 교회들 역시 독일인 교회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한인, 독일인 따로 구분이 있겠습니다까만은.
오늘날 미국에서 독일계 미국인이니 아이리쉬 미국인이라 굳이 자처하는 사람들은 없고 다만 성에서 독일계이려니 아일랜드계이려니 짐작할 뿐입니다. 이제 그들은 미국인일 뿐입니다. 소수민족의 경우는 다소 예외적으로 더욱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오늘날 한인교회가 우려하여 애쓰고 있는 부분중의 하나는 2세대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학생부 활동 등으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들이 다니는 한인교회를 함께 다닙니다만 대학을 다니기 위해 부모곁을 떠나는 시기가 되면 그들중 90% 이상이 교회도 다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어도 문제가 되어 현재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청소년 예배는 미국목사님이 맡아서 하십니다만 교회와 부모곁을 떠난 아이들을 잡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니까 The Godfather Saga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영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입니다. 그동안 텔레비전에서 [대부]영화 시리즈 각각을 나누어 몇 번 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워했었는데 전날 우리집 아이가 교회캠프를 떠나고 난 후라 눈치 볼 것도 없이 마음놓고 보자 면서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대부] 시리즈면 시리즈지 Saga는 또 뭐꼬 하면서 사전을 찾아보니 1. 중세북유럽의 전설 2. 무용담, 史話 3. 대하소설 이라네요. 장장 9시간의 대하 영화라고 번역해 봅니다. 영화 [대부] I의 전편을 추가하여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론 브란도가 대부가 되기 이전의 배경이 나옵니다. 마론 브란드가 시실리 섬을 탈출하여 어린나이에 혼자 미국으로 이민와서 미국땅에서 어떻게 가드파더가 되어가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대부] I편이 1972년도에 만들어졌는데 인기에 힘입어 1977년 [대부] 일편과 이편, 그리고 그 일편 이전편을 만들어 saga라고 하였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9시간의 대하영화를 점심, 저녁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눈을 비비며 보았습니다.
한국서 못보았던 전편에는 이태리 이민자들의 생생한 생활배경이 나옵니다. 대화도 거의 이태리말로 진행되고 영어자막으로 나옵니다. 이태리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 오늘의 한인타운처럼 이태리 타운에 해당되는 곳이겠지요. 이태리인들의 축제가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저의 눈에는 초기 이태리인들의 이민생활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론 부란도를 중심으로 세 세대가 등장합니다. 이태리말이 주로 쓰이던 전편에서 후편으로 나가면 거의 영어로만 사용되고 결혼풍습, 축제의 모습들, 음악이 달라집니다. 그들의 문화가 미국화되어 갑니다.
오늘날 그들의 타운도, 마피아들도 영화속에서나 나올까 싶고 이태리 음식만이 명맥을 유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보았던 번화한 한인타운, 한국어 역시 언젠가는 미국사회로 흡수되어 버리고 불고기, 김치 등의 한국음식 메뉴만이 남아있게 되는 날이 언제쯤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세대가 더 지나가는 30여년 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