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감기에 대하여

이춘아 2020. 2. 23. 09:14

감기

2002.12.21

 

독감이 온다고 예방주사를 맞으라고들 하였지만 이제까지처럼 나와는 무관한 것인양 지나치려했습니다. 그런데 심상치않은 기운이 나에게 덮쳐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약속된 일들이라 예정대로 움직였습니다. 열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평소 냉혈한처럼 36도 5부 이상 오르지않던 몸이 금새 37도를 넘어섭니다. 아이가 아프고 난후 며칠 후 였습니다.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가능하면 한방으로 치료해보리라 했습니다. 의사는 요즘 감기에 대해 언급하고는 물리치료를 하고 침을 놓은 후 부황기까지 들이대고 달여놓은 약과 가루약까지 주었습니다. 2만7천원을 내고 왔습니다. 생전처음 부황을 떠보았던지 그것이 오히려 몸을 욱신거리게 했습니다. 약을 열심히 먹었지만 열은 계속 올라 다음날 39도가 되었습니다.

 

입에 넣은 체온기의 수은주가 툭툭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주어들은 온갖 상식으로 나를 관찰합니다. 열이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감기바이러스와 나의 몸 면역체계간의 싸움이고 그 싸움이 열로 나타나는 것이리라, 열이 오른다는 것은 내 몸의 단백질이 타는 것이고. 그 단백질 타는 냄새가 곧 열냄새라고 생각하니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39도까지 오르는데는 겁이 납니다.

 

자고 나니 좀 나은 듯 하였지만 열오르는데 겁이 난 나는 받아온 한약을 다 먹은 후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열이 37도 5부로 떨어지긴 했지만 겁이 덜컥난 나는 한방치료를 미심쩍어하며 양방으로 치료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주사까지 맞고 왔으나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의 판단은 양약은 먹지 말아야지 한 것입니다. 이쯤되면 나는 전문가의 진단은 믿지 않고 나름의 판단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아마 나같은 자가진단의 환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잘난 환자들이 병을 키운다고들 하지요.

 

주사를 맞고 오자 곧 열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학의 힘을 다시한번 신뢰는 했지만 나의 면역체계를 흐뜨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열이 오를만큼 올라야한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예상밖의 높은 열에 지레 겁이 난 것입니다.

 

열이 떨어지고 이제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알았던 나의 몸은 다시 이상해지고 있었습니다. 대구의 친척 결혼식에 다녀온 남편, 영화관에 다녀온 아이가 들어오던 바로 그날 저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냉감이 지나갔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말해오던 한기(寒氣)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팔 다리 곳곳이 욱신거립니다. 이 이상한 느낌, 이것은 다시 감기 증세이다. 열이 다시 오르고 나는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의사가 처방해준 종이를 과감히 버렸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 약이 주사로 열을 떨어뜨린후 마지막 소탕작전용이었는데...

 

할 수 없이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이번에는 약을 꼬박꼬박 먹고, 이제 다 나았다고 했는데 이상한 코가 자꾸 나옵니다. 열로 인해 흐르던 코가 이제는 콧속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시 축농증으로 된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지어준 약을 꼬박꼬박 먹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습니다. 감기와 관련하여 이 생각 저 생각을 해 봅니다.

감기(感氣)는 기(氣)가 그 무엇에 감응하여 면역체계에 이상이 오고 그로 인해 우리 몸의 기가 흐뜨러지는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간혹 누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저 사람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구나, 좋지 않은 일이 있었겠구나 라고 막연히 추측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나의 감기를 돌이켜봅니다. 나 역시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서 그 평형을 잃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항상 시이소를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까딱거리면서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가 아차하는 순간 한쪽이 기울어지는데 바로 그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허해지면서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오면서 완전히 맥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욱신거리며 열이 올라갔던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허약해지면서 차라리 이럴 때 편하게 아팠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래된 환상입니다. 우아하게 아파서 누워있는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그럴듯한 자세로 누워 책도 보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잠이 들고 다시 눈을 떠 책을 보는 한가한 그러한 장면입니다. 핼쓱하고 창백하며 온 몸에 힘이 빠져 아무런 욕심도 없는 그러한 얼굴입니다.

 

그런데 실정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밥을 해야하고 얼굴은 열로 벌게지고 두통으로 온갖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화가났던 장면까지 머리속에서 되풀이하여 생각하고 있으니 최악의 상황입니다.

 

어려서 아팠을 때가 생각납니다. 친구들의 아버지는 아파도 학교에 가야가야한다는 것이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아프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근상이라고는 타보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내 생일이었는데 열이 나서 끙끙거리며 아랫목에 누워있는데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 혼자서 맛있게 잡숫고 계시길래 내 생일인데 왜 엄마가 미역국을 먹느냐며 아픈 와중에 섭섭해서 말했더니 엄마 왈, 니 낳느라 내가 고생했으니 내가 미역국을 먹어야지 라고 놀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좀 그런편이었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왜 그렇게 냉정하게 보였는지. 그런데 나도 아이를 낳고 아이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여 맛있게 먹으면서 우리 엄마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게 됩니다. 엄마가 냉정한 것 같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또 어느날 아파서 학교를 가지 않고 누워있었는데 점심무렵 지나니까 살만한 것 같았습니다. 꽤가 나면서 아무도 없을 때 슬그머니 일어나 옆집 만화가게로 갔습니다. 만화가게 아저씨는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봅니다. 학교도 가지 않고 만화방에 오다니 하는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만화방의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화가 난 엄마가 손짓을 합니다. 죽었구나, 그리고는 종아리가 퍼래지도록 맞았습니다. 맞으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아프다고 결석했는데 다리 종아리가 퍼렇게 되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했습니다. 더 이상의 기억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검정색 스타킹을 신고 다녔던 계절이었던 모양입니다.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감기로 한의원을 다녀오니 아이가 물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더냐고 합니다. 감기걸려 아프면 의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주알고주알로 위로를 받고 싶어하지만 결국 약먹고 푹 쉬라는 이 말밖에 없습니다. 그 말이 가장 명답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렇게라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선거 유세전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아프지 않나, 감기도 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참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플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감기들었던 것은 아플 겨를이라도 있었기에 아팠던 것이고, 올 한해 뒷풀이를 나름대로 감기로 때운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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