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뮤직카페 - 내 삶에 젖어들었던 음악을 찾아
이춘아
2004.5.21
작년, 광주 북구문화의집에 들렸다가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테마뮤직카페>프로그램에 혹했었다. 그중 ‘김경희의 마흔아홉 삶’이라는 제목에 관심이 갔다. 마흔아홉살 한 아줌마의 삶을 스쳐 지나갔던 음악들을 골라내어 그 음악과 자신의 삶을 스토리화하여 음악과 삶의 이야기를 엮어나간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누구인들 그러한 이야기가 없을까만, 그 누구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음악에 곁들여 스토리화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문화적 삶이 아닐까 한다.
‘스토리텔링’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우리 모두가 스토리 텔러(story-teller)이다. 다만 끌어내지 못했을 뿐. 둔산 선사유적지의 문화유산해설사는 둔산 선사유적을 주제로 스토리 텔러가 된다. 호암갤러리의 전시설명 도슨트(docent)는 기획전의 주제와 그림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해주는 스토리 텔러가 된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을 스쳐지나갔던 음악, 그 가운데 특히 그 음악을 떠올리면 당시의 내 삶의 상황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특별한 음악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내 삶과 엮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음악이 우선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가 우선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렇게 하고 싶어서, 문화자원봉사자들과 테마뮤직카페를 하자고 제안했다. 자발적인 신청자 설흔여섯살 잠잠이가 테마뮤직카페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제까지 세차례의 테마뮤직카페가 열렸다. 첫 번째는 ‘잠잠이의 재즈이야기’, 두 번째는 ‘별똥별 아줌마의 크로스오버 뮤직’ 세 번째는 ‘류귀애의 시.노래 이야기’였다. 첫 번째는 계룡 문고의 북카페에서, 두 번째는 한밭문화마당에서, 세 번째는 구즉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열었다. 앞으로는 구즉도서관에서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 오후2시에 고정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테마뮤직카페를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나였지만 그 결과에 가장 감흥을 받은 사람도 나 였다. 우선 분위기 음악으로만 흘려듣던 재즈에도 역사가 있었고 재즈의 대가들을 언급하고 그 음악들을 잠잠이의 이야기를 통해 들으니 그 음악들이 내게로 왔다. 잠잠이가 선곡해서 만들어온 시디를 선물로 받아 집에 와서도 짬짬이 들었고 재즈의 제목과 직결되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소설도 빌려와 읽었다. 한동안 재즈에 빠져있었다.
카페에 참석한 한 사람으로부터 별똥별 아줌마가 또 한 음악한다는 말을 듣고 다음번 출연자로 요청하여 2003년 12월 송년모임겸하여 크로스오버(cross-over) 뮤직을 들었다. 말재간꾼이자 글재간꾼인 별똥별 아줌마의 음악간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뮤직도 연말연시 으뜸의 음악선물이었다. 크로스 오버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아 시와 노래라는 장르를 연결하는 공연팀 나팔꽃를 떠올렸다. 나팔꽃 공연은 작년 10월 초청하여 대덕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벌인바 있기도 하여 나팔꽃 공연팀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자인 류귀애님에게 시.노래 이야기를 부탁하여 세 번째 테마뮤직카페를 열었다.
구즉도서관 개관하는 날 가보아 점찍어 두었던 시청각실이 테마뮤직카페 하기에 딱이다 싶어 그곳을 빌려하였다. 음향시스템이 잘되어 있어 전달효과가 좋았다. 심지어 어수선한 공연장보다 음악흡수력은 그곳이 더 좋았다. 시 노래는 원래 하나였을 것이지만 새롭게 부활되고 있는 시.노래 공연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자인 류귀애님의 이야기는 우리를 감동시켰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시 낭송회를 하면서 노래도 들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 번째 테마뮤직카페가 있고난 후 인천에서 지역문화네트워크 모임이 있어 갔다가 그곳에서 시를 2-3백개는 암송할 수 있는 한분을 만났다. 즉석에서 낭송해준 시가 바로 얼마전 테마뮤직카페에서 음악으로 들었던 것이었다. ‘알고 들으면 더 잘 들린다’라는 명구가 적용되었다. 노래제목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이고 원제목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였다. 암송해서 들려주었던 그분처럼 아직 외우지는 못하고 찾아서 옮겨 적어본다.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 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테마뮤직카페를 해보자고 제안했던 나 스스로 감동하고 있다. 자주 만나고 함께 일을 도모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던 진면목과 감수성을 이런 기회를 통해 다시 느끼고 알게 되면서, 잊혀졌다고 여기고 있었던 ‘사람에 대한 싸한 감정’도 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던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 나도 언제 테마뮤직카페의 디스크자키가 될 것이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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