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판축

이춘아 2020. 2. 25. 23:43

 

 

2002년8월26일 하루종일 희뿌연 날

 

환상과 착각의 사이

 

 

인천공항에서 대전으로 내려가기 위해 여행사가 준비한 전세버스를 타는 순간 일행이었던 초등학교6학년 남자녀석이“이게 바로 내가 살고 싶은 나라야”라고 말합니다. 4박5일간 일정의 중국여행후 첫 소감입니다.비행기 탑승구를 벗어나 인천공항건물로 들어오는 순간‘아!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의 속마음과 흡사합니다.버스를 타고 영종도를 지나 강변도로를 통해 가는 동안 참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고작4박5일간의 중국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는 외국관광객이 된 것 같은 시선으로 내 나라 서울을 보았습니다.

 

그 날따라 더웁기는 했지만 시원한 에어컨이 내장된 버스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은 아름답습니다.바로 가까이에 큰 강이 있고 산이 있고 아파트들이 즐비되어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정비된 대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이번 월드컵대회를 치루면서 한결 정돈된 모습이 된 것인지 아니면 중국을 다녀오면서 비교하고자 하는 시선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산천은 아름다웠습니다.외국여행은 결코 나라간의 문화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고자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앞서는 느낌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4박5일간의 중국답사여행 이후 계속 갖게 되었던 혼재된 느낌.잠깐의 답사라 할지라도 그곳을 통해 얻게 되는 신선한 감흥같은 것,그것이 중국여행에서는 없었습니다.왜 그러한가를 한달 가량이 지난 후에야 혹시나 이런 것은 아닐까로 종결지어 봅니다.

 

중국답사를 가기전 주최측인 충남대학교 박물관 측에서 정성껏 만들어준A4용지174쪽의 답사자료를 읽으면서 내가 왜 중국을 가고자 하는가 명분을 이렇게 만들어보았습니다.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하고 찾아가보고 하면서 끝도 알수 없는 문화의 원형에 대한 궁금증이 중국답사로 이끌게 했다고.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라고 스스로 명명해보면서 찾아가 보았던 중국은 자료로만 보아왔던 역사 속의 옛 중국 보다는2002년의 산업화 과정에 있는 중국의 모습이 우선 눈에 띄였고 현재를 살고 있는 중국사람들의 모습이 더 가까이 다가왔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얼굴표정,난삽하고도 무지막지한 간판의 모습은 우리의 지나간 도시산업화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역겨움을 주었습니다.박물관과 유적지 앞을 메우고 있는 남녀노소 잡상인들의 막무가내 실갱이가 정신을 혼란하게 하였습니다.싸게 살 때도 있었고 비싸게 살때도 있었지만 문화상품을 문화적으로 건네받지 못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제와서 다시 중국은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생각해 봅니다.근현대를 다룬 중국영화를 몇편 보았었지만 여전히 중국은 몇백년 전의 세상으로만 막연하게 지니고 있었던 환상속에 있었던 것입니다.그 환상속에서 나름대로 형성된 과거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습니다.그것이 중국답사를 방해했던 첫 번째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한국의 고도인 경주 사진과 설명만으로 탐복하여 한국을 찾아온 관광객 또한 나처럼 스스로에 의한 착각으로 실망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던 몇 개의 사실들을 확인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판축법’이란 것입니다.작년 여름 이맘때 즈음하여 대전의 문화유산을 공부하면서‘월평산성’이란 곳에 답사를 갔습니다.산성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백제계 산성의 경우 판축법을 사용하여 성을 쌓는다고 하는데 판축법이란 것은10cm가량의 흙을 쌓아올린다음 통나무를 이용하여 여러사람이 이 흙을4-5cm로 다져내리는 작업입니다.흙을 다져나가면서 쌓아올렸기에 단면을 보면 시루떡처럼 흙의 결이 일정하게 보입니다.처음 그 발굴현장을 보았을 때 참으로 신기하였습니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여되어 얼마나 열심히 다져야 저렇게 되나 하는 감탄이었습니다.그리고 그 판축법이 백제계 산성일 경우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중국 하남성 정주(鄭州)에 있는 상성유적지에서 판축되어 있는 토성을 확인해 보는 순간 가슴이 설레였습니다.역사적으로 시간을 두고 연결되어 있는 문화의 흔적들이었습니다.지금으로부터3천5백년전 은나라(商代라고 불림)말기의 도성유적이라고 합니다.발굴 결과4m높이의 성벽이7Km였다고 합니다.그 성벽들이 도시 중간중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이 토성으로부터 발굴되었던 유물들이 박물관 뿐 아니라 발굴당시에 참여했다고 하는 한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박물관도 있었습니다.토성의 단면을 볼 수 있게 하고 그곳에서 발굴되었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던지 자고 있다가 일어나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설명을 듣고 함께 정주상대유적지인 토성을 찾아가보았습니다.대전의 산성답사시에도 틈만나면 주워오던 버릇대로 정주의 토성에서도 흙사이에 묻혀있는 토기파편들을 주워왔습니다.

 

서안에서 정주로 가는 기차안에서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관중평야(사방의 길이가400여km가량된다고 하는)의 옥수수 밭을 보고 있던 중 아!했더랬습니다.채소를 키우기 위해 직각삼각형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는데 한면을 토담을 쌓아올려 비닐을 쳤는데 그 토담이 판축법으로 쌓아올린 것이었습니다.또 낙양에서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갖고 시내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도로의 보도블럭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보도블럭을 깔기전 흙다지기를 하고 있는데 단순한 기계로 작업하였지만 그것은 분명 계량화된 판축기계라고 생각되어 감탄하며 구경하였습니다.

 

판축법이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추정해봅니다.몇십만년 넘게 황토로 다져져 있는 산을 동굴로 파면 집이 되고 그것을 깎아서 사용하면 벽이 되어버립니다.그래서 산을 깎아낸다고 하더라도 우리처럼 석축을 하고 나무를 심어 무너지지 않게 노력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도 시멘트처럼 차지게 응결되어 있어 아주 견고하다고 합니다.그러한 황토층을 보면서 살아왔기에 인공의 성을 쌓을 때도 자연이 가르쳐준 방법으로 황토를 다지고 다져내어 성으로 축조하였던 것이 판축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백제계 산성 역시 그 판축법을 따르고 있다고 하니 백제사람들도 그쪽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라 추정되고 있는 듯 합니다.역사적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달리하였지만 흔적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상상하는 순간은 참 그럴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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