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비천(飛天)

이춘아 2020. 3. 4. 23:19

 

 

 

 

 

비천(飛天)

2003년11월28일

 

 

돈황 막고굴 벽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이미지는 비천(飛天)이었습니다.그것을 유영(遊泳)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옆으로 헤엄치며 날아가는 모습입니다.저뿐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에 남아있는 비천상은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비천상입니다.에밀레종의 비천은 무릎 꿇고 손 맞잡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손 맞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병 또는 약병 같은 것을 들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만).그래서 돈황 막고굴의 유영하는 듯한 비천상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비천상은 역시 점잖은 편이야 저렇게 요란스럽게 날아다니지는 않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기회 되면 한국의 비천상들을 알아보리라 생각했었습니다.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절친하게 지내는 분으로부터 김천 직지사에서<범종 탁본전시회>가 있으니 꼭 다녀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저는 신문에서 제목이 참 좋아 스크랩해 두었던 전시회였기도 하였기에,전시회가 종료되는 시점인10월의 마지막 날 함께 갈 사람들을 수소문하여4명이 직지사로 갔습니다.

 

 

예상외로 전시회의 규모는 컸습니다.정성들인 탁본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범종에 그렇게 다양한 문양이 있는 줄 처음 알게 되었으며,그것도 시대별로 구분하여 전시해놓음으로써 문양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두터운 한지에 묻어나온 문양은 스크랩북에4B연필로 스케치한 것 같습니다.마침 이른 시간이어서 관람객들은 우리뿐이어서 플래시 터뜨리지 않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실내에서 얼른얼른 찍은 것이라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만 몇 장면은5만원짜리[도록]보다 탁본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어 흐뭇합니다.

 

 

이 전시회의 제목이<하늘 꽃으로 내리는 깨달음의 소리-한국의 범종 탁본전>입니다.깨달음의 소리는 종소리일 것입니다.종마다 음색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 소리도 한켠에서 들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았습니다. ‘하늘 꽃으로 내리는’이라는 표현이 아마도 비천의 전체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프레이 물로 적신 두터운 한지를 종에 잘 붙인 다음 최적의 상태로 말랐을 때 좋은 묵(좋은 묵이어야 함을 이 전시를 주관하신 흥선 스님은 강조하셨습니다)으로 문양을 두드려낸다고 합니다.이 작업과정이 일반인과 다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심미안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러내는 것일 것입니다.종교예술의 세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훌륭한 범종의 문양을 기본으로 하여 그 문양을 드러내는 작업에 담겨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관람객인 우리까지 그 마음도 전달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따뜻한 느낌의 한지의 질감에 결코 차지 않은 묵색으로 드러난 비천상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청동의 범종에서 볼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돈황 막고굴 벽화의 비천상을 한국의 범종 탁본과 비교하여 보시도록 가능한 사진을 많이 올렸습니다.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비천도 스캔하여 올렸습니다.고구려 고분벽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는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에 있는<안악제2호분>벽화중 비천그림입니다.돈황 막고굴 벽화뿐 아니라 안악2호분 벽화의 비천은 유영하는 모습인데 비해 통일신라 비천은 정적인 모습이 대조적입니다.그리고 강원도 횡성에서 출토되었다는14세기 종으로 추정되는 비천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마음 한가운데가 따스해지는 모습으로 이 탁본전의 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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