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문화마당이 진행하는 ‘소대헌 호연재, 절로 좋구나!’를 보러갔다. 문화재 당호의 이름을 부부를 나란히 올린 곳이 이 곳이 처음이다. 양성평등문화재 1호인셈이다. 2001년 문화유산 공부를 하면서 이곳 마당에서 김호연재의 시를 친구가 낭독했다. 그렇고 그런 시가 아니라 300년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시를 듣는다는 것은 뭔가 달랐다. 집안 할머니의 시를 필사에 필사를 거듭하며 살아 남았던 시가 194편이라고 한다. 2001년 당시 ‘송용억 가옥’이라 불린 이 고택은 대문을 열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채가 양쪽으로 있고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과 안채, 뒤편으로 집안 사당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채가 각각 있는 곳도 드물거니와 안채도 호연재라는 당호가 있는 곳.
300년의 시간을 마주하며 당대의 시들이 살아 움직이는 곳. 소대헌 호연재 고택 입구에 있는 호연재의 시들이 몇 편 있다. 시를 옮겨 적어본다. 소리 내어 낭독해보시라.
김호연재(1681~1722):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자, 안동 김씨로 고성 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넷째 딸이다. 19세에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인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결혼하여 28세에 아들 송익흠(보은현감, 호 오숙재)을 낳고, 딸을 낳았으며,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호연재는 출가한 이래 지금의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소대헌 고가에서 살아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생활하는 틈틈이 한시를 지어 194편의 작품이 전해져오고 있다.
야음: 밤에 읊다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 해는 또 저물거늘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취작: 술에 취하여 짓노라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안하도다
초연히 자리 위에 누웠으니
즐거움에 잠시 세상의 정 잊노라
감춘: 봄을 느끼도다
달이 희니 일천 산이 고요하고
꽃이 피니 일만 나무 향기롭도다
봄 근심이 희미하여 취코자 하니
어느 곳이 이 나의 시골이뇨
자상: 스스로 슬퍼하노라
아까워라, 이 내 마음이여
탕탕한 군자의 마음이로다
표리에 하나도 감추는 게 없으니
명월이 흉금에 비추었도다
맑고 맑아 흐르는 물 같고
좋고 좋아서 흰구름 같도다
화려한 것을 좋아 아니하고
뜻이 구름과 물 곁에 있도다
세속 무리들과 더불어 합하지 않으니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그르다 하도다
스스로 규방 여인의 몸인 줄 설워하니
창천은 가히 알지 못하리로다
어찌하리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만 능히 각각 뜻을 지킬 뿐이로다
선기일감회득고언기가: 아버지 기일에 감회하여 고언 체를 얻어 집에 부치노라
망망히 고국이 멀었고
하늘이 높고 흰 구름이 나는도다
이 아우 멀리 우귀하니
한번 가메 소식이 드물도다
외딴 마을 긴 여름날에
적막히 사립을 닫았도다
머리 돌려 고향을 생각하니
아버지 기일 이 가운데 지나시는도다
여생이 설운 줄 점점 깨달으니
추모하는 정을 견디기 어렵도다
일 천 회포 애원히 맺혔고
만리 수한이 깊었도다
슬픈 바람이 불기를 절절히 하니
나로 하여금 더욱 마음 상하게 하는도다
형에게 부치는 글을 지으려니
한 줄 눈물에 또 한 줄이로다
고홍: 외로운 기러기라
어느 곳 외로운 기러기 내 문을 지나는고
두어 소리 처절하여 무리를 떠남을 원망하는도다
차가운 창에 홀로 자며 집을 생각하는 사람이
깊은 밤에 잠이 없어 혼이 끊어지려 하는도다
자회: 스스로 뉘우치다
맑은 밤이 초초히 오경에 사무치니
반생에 끼친 허물 눈 속에 밝았도다
성쇠는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선악은 성실함에 좌우되는도다
말씀은 기쁨만 갖추면 스스로 취하는 것이오
덕은 괴로움을 못 참으면 뉘우침이 나는도다
이제 늙어 이에 이르렀으나 행한 것이 없으니
어느 낯으로 다른 때에 부형께 뵈오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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