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2화
1979년 2월, 설 지낸지 일주일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가셨기에 우리집과 동네 어르신들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초상을 치루었다. 그 와중에 내게 남아있는 것은 아버지의 노자 였다. 아버지는 [노자]를 끼고 아래 위층으로 다니셨다. 돌아가시고 난 며칠 후, 나는 아버지가 끼고 다니셨던 [노자]를 들쳐보았다. 아버지의 곱상한 글씨가 여백에 메모 되어 있기도 하고 밑줄도 쳐져 있었다.
내가 ‘노자’를 언제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던 것같다. 노자의 ‘도’를 먼저 인지하고 있었고, 성경을 읽게 되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이다’ 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 ‘길’이 ‘도’라고 적용하면서 흥미롭게 성경을 읽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버지의 노자’를 읽어야겠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일까. 김용옥 선생의 ‘노자’ 강의를 꾸준히 들었다. 원문에 대한 궁금증이 일다가 드디어 [노자가 옳았다]를 사서 필사하면서 한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며 읽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한자를 좀 안다고 해서 한문을 아는 것은 아님을 확인하였고, 강의를 백번 듣는다고 아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직접 밑줄 긋고 써가며 읽어야 내 것이 됨을 다시 깨닫는다. ‘공부’ ‘학습’ 이란 것은 꾸준히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들을 때 뭔가 아는 것 같았는데, 결코 알아들었던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김용옥 선생이 칠판에 써가며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한자를 잘 쓴다 생각했지, 한자가 내게 와닿지 않았는데 그것이 무슨 공부가 되었을까. 선생의 잡담에 가까운 말만 기억했을 뿐이다. 영어 공부를 수년간 했음에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머리가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단어를 쓰고 외우며 생각하며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문도 마찬가지였던 것.
‘아버지의 노자’는 내게 이미지로 남아있다. 허허로운 표정이 노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겠다,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 ‘노자’를 공부하려고 한 것일까. 나도 나머지 삶을 ‘노자’와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걸까.
김용옥 선생이 강의할 때 노자의 문장에 감탄하는 목소리를 떠올리며그 수준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아버지를 기억하며 나에게 남겨진 아버지의 유산을 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