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역 앞 오래된 양복점 기신양복점.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양복점. 재봉틀 의자의 바래고 닳아 있는 색상과 질감이 60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2020.10.24.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서 패션 쇼를 하고 있다.
기성복에 밀려 그 많은 양복점들이 떠나가고 이제 몇 곳 남지 않은 양복점 가운데 하나인 기신양복점. 류아무개 사장 혼자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이 일대가 양복점 거리였다고 한다. 한약거리와 인근한 거리이다.
양복점 주인은 옷감 샘플을 보여주며 색상, 계절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라고 한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은 옷감 선택에서 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결과물에 대한 디자인을 이미 구상하고 와서 요구하거나 주인장이 제안하는 디자인을 받아들여 결과물을 입어 보고 선호에 따라 단골이 되곤 한다.
기성복이 나오면서 완제품 선택은 상상력 없이 선호를 결정하게 한다. 그러나 맞춤옷은 그 작은 샘플 천으로 어떠한 디자인까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성복은 적어도 실패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소비쟈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라고 할 수도 있다.
기신양복점 사장님께 물었다. 맞충복을 선호하게 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에 대해 사람들이 입어보고는 ‘이래서 맞춤복을 하게 되는구나’ 라고 한다고 한다. ‘이래서 하게 되는구나’ 라는 말에 들어있는 함의는 입어서 뭔가 편한 느낌, 내 몸에 딱 맞는 느낌, 앵기는 착용감 등 일것이다.
남편은 기신양복점에 가서 옷을 맞춰입는 것이 오래된 꿈이라고 했다. 대전역 앞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입은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했으나 자신의 현실은 그럴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 오래 묵어져 있었다. 기성복에 비해 생각보다 비싸지만 맞추기로 결정하고 기장을 재고, 중간에 가봉’이라는 것도 하기로 한 후 다음 주말경 옷을 찾기로 했다. 찾으러 갈 때 까지 설레임이 있다. 기성복은 그런 설레임은 없다. 소비자의 선택으로 결정되고 카드결재로 끝난다.
내가 옷을 맞춰 입은 첫번째 시도는 나팔바지였다. 중학교 일학년 때, 엄마를 졸라 양장점에 가서 맞추었다. 생각난다. 권색에 줄무늬가 있는 바지. 막상 찾고보니 기대만큼의 멋짐은 아니었지만 나팔바지는 그럴듯해 보였다. 1960년대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유행시켰던 나팔바지의 원조는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그 나팔바지 이후로는 딱히 맞춤옷은 기억나지 않고, 대학 들어가면서 옷을 맞추었고, 서울 종로에서 친구의 단골양잠점에서 맞추었던 기억. 친구는 이미 다양하게 옷을 맞추면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요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좋아는 보였지만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종로의 수많은 맞춤 양복 양장점도 사라졌다.
대전 중촌동 맞춤복 거리를 알게 되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맞춤옷에 대한 향수가 올라와 있던 참이다. 나도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색과 디자인을 제안하며 한벌 맞춰 볼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