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5 월
“산책 갔다 올께” 하고 나섰다. 계룡산 동학사 쪽으로 둘러보고 오려고 했다. 오전 8시30분.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주차공간도 있었다. 주말 벚꽃 행락객들의 흔적을 지나 동학사 방향으로 접어드니 계곡물 소리가 쏴아 하다. 토요일에 비가 많이 왔다. 비 온 후 계곡 산책은 물 소리로 마음을 이내 열어 준다.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미타암과 동학사 사이길로 접어 들었다. 조금 올라가다 내려올 마음이었는데 돌 길이 편하게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계곡 물길 따라 조금더 조금더 하다가 올라가 버렸다. 이제 돌아갈 길이 멀어졌다. 남매탑까지 가기로 하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는데 남매탑이 가까와지면서 사람소리가 난다.
십여년도 더 오래 묵어 있던 남매탑 모습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의 남매탑은 왜소하고 소박한 탑 두개 였는데, 오늘와 보니 그게 아니다. 멋진탑이다. 이 높은 곳에 이렇게 모양을 갖춘 탑을 만들었다면 제대로 된 절이 있었을 것이다. 청량사 라는 절이었다고 한다. 남매탑 바로 아래 상원암이라는 절이 있어 휴식장소를 마련해주고 있다 물도 먹을 수 있고, 앉을 수 있는 나무의자도 있고 해우소도 있다. 고마운 절집이다. 어떤 곳은 물도 해우소도 사용하기 어려운 곳이 많은데 이곳은 등산객이 쉬어가는 절집인 것이다.
남매탑에서 500미터만 더 올라가면 삼불봉이라 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동학사주차장 방향길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등산객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려가고 있는 우리는 운동화에 물 한병 넣은 가방도 없고 스틱도 없다. 예전에 헉헉대며 산에 오를 때 내려오는 사람들이 그리도 부럽더만, 오늘의 우리 모습이 그랬을 것이다.
2001년 대전으로 이사와 계룡산에 올랐을 때 성큼성큼 내려오는 청년의 모습에서 등산화를 신으면 저렇게 내려올 수 있겠구나 했었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등산화를 샀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 또 헉헉대며 올라가고 있는데 맨발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위 산이라 바닥 돌이 험한데 맨발이라니. 아마 도 닦는 사람이구나 했었다. 맨발은 언감생심 도전 못해봤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도 꽤 있어보이지 않았을까. 울긋불긋 등산옷차림도 아니고 간촐한 운동화에 스틱도 없는 맨손의 노인. 평소 산행 좀 해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산책 나오듯 계룡산을 성큼 올라갔다 내려온 노인네.
2001년 대전으로 이사와 신기했던 것이 집에서 자동차로 15분이면 계룡산 동학사로 갈 수 있고, 1시간 30분이면 무주구천동도 갈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전국 일일권인 지점.
생각보다는 계룡산에 자주 오르지는 않았지만 동학사 계곡이 좋아 계곡 산책은 자주 했었다. 계룡산을 삼각으로 지탱해주고 있다는 동학사 갑사 신원사은 자주 갔었다. 하지만 계룡산을 제대로 넘어간 적은 없다.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이다. 계룡산을 산책하듯 올라갔다 내려왔다는 것. 앞으로도 그렇게 몇번 더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