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약간씩 떨어지지만 자연휴양림 산책을 시작.
산벚들의 향연이다.
이렇게 많은 산벚을 가까이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니.
2021.4.13 화
어제 남이자연휴양림 산책은 산벚과 조우하는 아티스트 데이트 였다. ‘오늘의 아티스트 데이트’를 염두에 두면 만나게 될 사람이나 사물을 아티스트 라 생각하며 만나면 나의 태도가 바뀌는 걸 경험했기에 가능한 만남이 이루어질 때는 데이트를 염두에 두고 만나려 한다.
‘데이트’는 만남이 있기 전 설레임의 시간이 있고, 만나는 순간까지 기다림이 있고, 만날 때는 순간순간 빛나는 눈빛이 있고, 데이트가 끝난 후에는 또다시 기다림. 설레임으로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갈증, 찌르르해져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한 감정을 되살리며 최대한 혼신을 기우려 만나야 한다.
산벚과의 데이트는 어떠하였는가. 기대하지 않고 갔던 것이었는데 비오기 직전 어두움과 습기 머금은 산벚이 신록의 연두빛과 묵은 사철나무의 짙은 색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전부 다 파스텔톤이 아닌 시간과 계절이 교차하는 직전의 순간들. 그래서 산벚이 더 빛나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산벚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진해에서였다. 동생이 사는 진해로 가고 있었다. 마산에서 진해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진해는 해군기지 중요군사기지라 그 터널만 막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터널은 주요 관통 길목이었다. 그 때는 벚꽃 축제가 끝난 시기였는데, 터널을 빠져나오니 기대도 않았던 벚꽃이 산에 하얗게 피어있었다. 그것이 산벚이었다.
이제 전국적으로 가로수를 벚나무로 대량 심어 제법 우람해져서 가는 곳곳마다 벚꽃을 볼 수 있다. 금산은 강원도처럼 온통 산이어서인지 산벚축제를 할만큼 산벚이 많다. 자연휴양림 부근은 기온이 낮아서였는지 늦게까지 산벚이 남아 기쁨을 주었다. 사진을 찍어 두었으니 가끔 들여다보며 다음 해를 기약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어 올 새로운 색을 보는 순간 어제는 지워져 버린다. 늘 변화해주는 사계절이 있어 고맙기도 하다.
어느 때인가 짙푸른 정글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열흘이상 머물다 왔을 때 한국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로 들어가고 있었다. 황금빛 논을 보고 갔던 것인데 어느 사이 추수가 끝난 황량함. 그 황량함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좋았던 기억이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계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늘 앞만 보고 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과거를 돌아다 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늘 변화하는 색조에 감탄하며 사계절이 지나간다. 봄이 오면 매년 지르는 환성을 되풀이한다. 마치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이러한 현상은 나이들어가며 더 심해지고 있다. 치매현상이라기 보다는 나는 비록 퇴조해가는 무채색이지만 새싹 연두빛 가을단풍에 기겁하듯 좋아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다른 계절은 나름대로 다 좋아한다. 나이들어가면서 생기는 특이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에 감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