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0 화
어제 동영상 숙제해간 것에 대해 강사선생님의 분석이 있었다. 처음 해 본 동영상 편집을 해놓고나니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선생님의 분석을 듣고 나니 뿌듯함이 여지없이 깨졌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니 수긍이 가고 절대 옳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찍고자 하는 목적이 처음부터 일관성이 있어야한다는 것. 왜 찍는지 잊지말고 초점을 맞출 것.(나는 가는 길대로 가기보다는 눈길따라 삼천포로 자주 간다). 영화 찍을 때, “액션” “컷”의 의미를 되새긴다. 디렉터는 들어가야할 순간을 잡아 “액션”을 해야 하고 멈추어야 할 순간을 “컷”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게다가 촬영비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사전의 기획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두 시간 가까운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것은 절대로 쉽지는 않지만 무엇엔가 홀려서 보게 된다. 다 보고 나서 뭔가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몰아가는 것도 있지만, 영화 전 편에 깔려있는 분위기이자 정조이다. 4분짜리 동영상 하나 찍어보니 단편영화 장편영화가 어떤 것인 알 것 같은 이 무모함.
동영상 찍는 목적은 '은퇴 후 일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객관적’이 될 수 있을까. 찍어놓고 보니 일상의 흐름과 다르지는 않으나 평소 사진 찍을 때처럼 보여주고 싶은 것만 찍은 것 같기도 하다. 은퇴 후 일상의 흐름은 평온한 듯 하나 내 속에서 여전히 뽀글거리는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다시 보아야겠다. 내가 하고자 하던 일상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는지.
앤드류 헤이 감독, 샬롯 램플링 출연의 영화 [45년 후]를 고사리들과 보았다. 물론 이전에 보았던 영화이다. 램플링 출연의 영화 [한나]를 보고 난 직후 여서인지 램플링의 표정이 익숙하다. 램플링은 나이든 얼굴이 더 좋은 배우이다. [한나](2017) 때 보다 두 살 적은 2015년 영화였다. 이 영화 역시 상을 많이 받았다.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작으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광고를 보면서 수상작도 아닌 노미네이트 된게 뭐 자랑이라고, 라고 했는데 노미네이트 된 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임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은퇴 후의 평온한 일상에 하나의 사건이 개입되면서 45년 부부관계가 전면 무너져내린다. 그 개입은 남편의 전 여자, 결혼했었을 수도 있었던 여자의 안타까운죽음이 다시 살아나는 극적 반전의 개입이다. 결혼 45년으로부터 2년전 케이트와 제프 부부는 케이트는 엄마의 죽음이 있었고 제프는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이 있었다. 제프의 여자는 스위스 빙하 크랙사이에 떨어져 죽었고 빙하 위의 눈이 녹으면서 47년 만에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전언이 있었을 뿐인데, 제프는 며칠 후 있을 결혼 45주년 기념파티와는 상관없이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허둥지둥하게 된다. 함께 더 오래 살아온 현재의 부인 케이트는 여전히 사랑하는 부인이지만 47년 안타깝게 죽은 부인(형식상이든 실제든 함께 부부로 짧게 나마 살았던)과의 추억을 마치 어제처럼 떠올리며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부인에게 이야기한다.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양쪽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나의 감정은 남편인 제프에게 더 쏠리고 있었다. 누구라도 제프의 상황이 되면 그럴 수 있지 않겠냐고. 이해해주는 김에 부인이 좀 더 이해해주고 수용해주길 바라는데… 부인 케이트는 여러가지로 감정을 참았지만 45주년 파티에서 춤 출 때 음악의 가사가 그대로 비수처럼 꽂히면서 남편을 안았던 팔을 결단의 몸짓으로 내린다. 그 상태로 영화는 끝난다.
부인 케이트는 이제까지 헌신적으로 살아왔던 45년의 관계가 단 몇년의 청춘시절의 관계로 돌아가는 남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단의 몸짓과 표정이다. 45주년 파티의 첫 춤 곡은 이들이 결혼파티에서도 추었던 음악이라고 한다. 같은 음악의 같은 가사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그 가사가 현재를 암시해주는 것으로 다가오면서 결단을 하게 하는 아이러니도 넣어주었다.
영화 보는 내 입장은 이제까지 45년이나 같이 살았고 여러가지로 참으면서 살았을텐데, 갑작스런 사건으로 인해 남편이 과거 속으로 빠져있고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45년 삶을 아니라고 결론짓거나 관계를 끊을 것까지 뭐 있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게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도 케이트처럼 할 것 같다. 사람이란 여러가지로 감추어왔던 감정들이 일시에 무너져내리면 결론은 무섭다. 이 영화의 제목 45년은 참 무서운 숫자이자 상징이다. 45년은 긴 시간이고 결혼생활을 일상의 시간으로 끌어온 숫자이기도 하지만 한번에 무너질 수 도 있는 시간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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