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린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이춘아 2021. 10. 16. 06:07




2021. 10.15 금

"우린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도올선생의 '동경대전' 강의 중 나온 말이다. 전후 맥락은 기억나지 않고 그 말만 내 귀에 들어왔다. 요사이 내가 찾고 있는 단어들이었지싶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아무르의 여주인공은 갑작스럽게 뇌경색이 오고, 반신 마비가 오고,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진다. 인간이 지닐수 있는 가장 무력감 상태가 된다. 남편은 결단한다. 부인을 죽게하고 자신도 가스 자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생명연장거부'에 도장을 찍을 마음을 먹게 된다. 하네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생명연장 거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말하고자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의 자존감과 독립심을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온 인간승리. 그러나 육체적 고통 앞에서 가장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자존감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눈에 들어온 연결 지점이 있다.

그녀의 뇌경색은 제자의 연주회를 다녀온 다음 날 발병한다. 갑작스럽게 방문하여 스승의 상태를 확인한 제자가 마음 아파하는 카드와 자신의 음반을 보낸다. 남편이 그 시디음반을 틀어주는 동안 그녀는 카드를 읽는다. 자존심이 상한듯 음악을 끄라고 한다.

제자의 연주회를 다녀왔고, 제자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제자에게 연주를 부탁한다. 그리고 제자가 보내온 시디음반을 들으려했는데 제자의 걱정이 담긴 카드의 글에 그녀는 마음을 닫는다.

그녀의 무력감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고, 제자의 연주를 들으며 무력감을 건드렸을 것이다. 자존감 하나로 살아왔을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나이들어가면서 더욱 옹립해야할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할 것도 자존감이다, 라고 생각해 왔다.

어제 대전고사리들이 함께 읽은 책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의 페미니즘]의 한 대목은 우리에게 밝은 빛을 전해준다. 저자인 김영옥은 'twilight of a life'라는 다큐영화를 소개한다. 90대 노모를 영상으로 남기려는 아들은 죽음으로 가고 있는 노모의 모습을 찍고자 했다. 그러나 노모는 죽음에 대한 기록이 아닌 삶에 대한 자신의 비전과 희망을 전하고 싶어한다. 다큐감독인 아들은 (반성하고) 노모가 원하는 여전히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관점으로 영상기록을 한다. 이 다큐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느낌은 알것 같다.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죽어가는) 그런 삶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고통으로 나락에 떨어지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하며 살다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사회문제의 하나로 고령사회에 접근하려는 관점을 버리게하고, 코로나 시대의 막연한 우울도 덜어주게 하는 긍정적 빛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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