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8 화
내 비위를 내가 맞추며 산다
고사리 회원들과 우리나라 패션디자이너 1세대라 할수 있는 노라노에 관한 글을 읽었다. 노라노가 언급한 '내 비위를 내가 맞추며 살았다'라는 글이 인상깊었고, 그 제목으로 글을 써보자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있음에 감사한 부분은 '내 비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내 비위가 어떻게 틀어있는지, 꼬여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걸 풀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비위가 틀린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고 방향을 바꾸거나 수정하려는 노력이 분명 있기는 했을것이나, 거의 내 감정대로 했을것 같다. 비위가 틀어졌을 때 그대로 눌러버리거나 꼬인 상태로 잠재되어 있다가 상황이 재현되면 더 꼬여버렸다. 화로 분노로 표출되거나 다른 일에 묻혀 잊어버리거나였다.
다행히 생리적으로 나는 비위가 약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생리적으로 비위가 약하면 증상으로 표출되니 그러려니 할수도 있다. 특정 냄새에 민감해져 생활이 힘들어질수도 있다. 내 경우는 정신적으로 비위가 틀어졌을 때가 문제였다.
겉잡을수 없이 비위가 틀어졌을 때를 떠올려본다.
ㅡ시어머니가 당신의 아들이 늦게 들어올 때는 안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맞이하면서 내가 직장 일로 늦어졌을 때는 뭐하다가 늦게 들어오느냐는 표정으로 비교되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남녀차별도 아니었고 당연한 인간의 감정 발로로 여길 수 있으나, 당시는 그렇게 비교된다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 이후 비교되는것도 싫었고 시어머니의 태도 모든것이 싫어졌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서서 가면서 없는 것까지 보태어 분노했던것 같다.
어쩌면 직장내에서 유사한 상황이 있을 때도 그랬을것이다. 그런 뒤틀림이 시어머니쪽으로 몰아서 꼬아버렸을 수도 있다.
당시 '내 비위를 내가 맞추고 산다' 는 걸 알았더라면 좀더 나았을까. 집안에서든 직장에서든 '내 비위'가 늘 우선이 아니었다. 그건 곧 '이기적'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것이었고,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사람은 직장이나 단체에서 공공의 적이었다.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것도 일종의 금기였고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다. 당시 노라노가 그렇게 말을 했다는건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어도 좋다, 내가 하고싶은걸 해본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이 나이가되어 내 비위를 맞출수 있다는 건 자신감과 용기의 표출이 아니라, 내 비위를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지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 그런건 절대로 아니다.
내 삶을 조절할 수 있다는것도 다만 막연한 분노게이지가 줄어든 것이지 여전히 세상의 일반적 정서와 타협하며 살고 있다.
내가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내 비위를 내가 맞추며 산다'는 상태가 되는 것은, 내 에너지를 최대한 높이며 살 수있다는 것이다.
나이들어 자연스럽게 세상과의 관계도 줄어들고 코로나로 인해 굳이 만나지않아도 되는 관계가 줄어들면서 내 비위를 다른 사람들과 맞추어야하는 횟수가 줄어 그 또한 편해진 것도 있다.
이제까지 내 비위를 대충 다른 사람에 맞추며 살아왔다면,
내 비위를 내가 맞추며 산다는 것은 상당히 주체적인 삶이 될 것 같다.
오늘의 결론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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