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숲밭

고통을 줄여주소서

이춘아 2021. 10. 5. 17:15


2021. 10.5 화

2021년 9월의 마지막 날. 이제 이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어제 신인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오전 9시경 먼 길 떠나셨다고 한다. 다음날 발인하고 전남 고흥 바닷가에 뿌려진다고 한다.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해듣고 안도했다. 몇 달 동안 육신의 고통을 다 느끼고 가셨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평소의 소신이었지만 이렇게 아픔의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은 억울하다고 하셨다. 몇 달 전 남의 일 말하듯 간암 말기라고 하실 때도 듣는 우리들은 놀라면서도 하도 담담하게 말씀하셔서 실감나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 찾아가 볼 때마다 몸이 급속하게 쇠해지는 것이 보였다.

이진경 권사도 급작스러운 위암 말기 진단 후 급속하게 쇠해졌다.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몸이 음식을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쇠해져서 죽었다. 곡기가 끊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자발적으로 곡기를 끊을 수 있기 위해서는 준비된 용맹정진이 있지 않고는 결코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돌아가신 두 사람은 생명이 암의 침입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으로 가는 소멸을 겪었다. 두 사람의 영정 사진은 그들의 생명력이 충만할 때 모습이었다.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와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시점이었다.

이런 저런 죽음을 나도 많이 겪었다. 무심히 넘기려 했다. 그래도 일주일 사이에 동시에 떠나시니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이 없이 가실 수 있도록 하는기도뿐이었다. 우리들의 삶 추구 역시 큰 고통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막연하게나마 기도한다. 그래서 개인에서 사회로 확대하여 평안과 평화를 기도하게 된다.

블로그에 소개할 책이 번쩍 눈에 들어왔다. 최선경의 [호동서락을 가다, 남장 여인 금원의 19세 조선여행기](2013)이다. 이 책은 최선경이 2013년 8월에 사인을 해서 직접 주었던 책이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왔다가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있었다. 금원이라는 조선시대 여성이 쓴 여행기를 부분 부분 인용하면서 해석을 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오랫만에 문자를 했다. 답장이 없었다. 최선경을 잘 아는 분께 문자로 물었다. 그 분께서는 ‘몰랐었군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라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그녀가 돌아갔다고 한다. 여성친화도시 프로젝트를 하느라 함께 국내외 출장도 다니고 했었다.

나의 나이 아래 위의 여성들 세 사람의 죽음을 일주일 사이에 동시에 알게 되었다. 세 사람 모두 암이었고, 고통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들이 살아있을 때는 고통을 줄여달라고, 그들이 돌아갔을 때는 잘 가시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 못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비록 주제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자애롭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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