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을 전해주는 일>
요즘 날이 맑지 않아 먼 산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저기쯤 산이 있음을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 흐뭇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밭으로 작년 2월 이주해왔을 때 아파트 난간에서 보이는 산들이 궁금하여 도서관 향토자료실을 찾아갔다. 해뜨는 쪽의 산은 계족산과 식장산, 해지는 쪽의 산은 계룡산, 남쪽으로는 보문산과 구봉산 정도로만 이름을 익힌 그 날 이후 우연같은 필연으로 대전문화유산해설사 공부를 하고 해설활동을 해온 일년간의 시간은 대전과의 목하 열애중이었다.
지역사랑의 정도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의 양과 비례된다고 이제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집 벽에는 ‘사천원짜리 명화'' 라고 이름지은 전지크기의 대전시 지도가 붙여져 있다. 해설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답사갔던 문화유적지, 앞으로 찾아가 볼 곳들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땅에 살아갔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의 삶이 지명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유형 무형의 문화재로 간신히 버티고 있으면서 간증하고 있다.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동춘당'' 마당에서 답사를 진행해주신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건물은 사람의 숨결을 먹으며 산다" 그 말을 되새기며 마음이 아팠다. 방 몇칸, 몇평짜리 아파트 이외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건축물에 사람의 숨결이 담겨질 수 있다는 놀라운 인식의 전환은 주위를 되돌아보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문화재 앞에서 또는 복원된 형태 앞에서 대전문화유산해설사들은 그때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전하기 위해 많은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 설명을 듣고 돌아간 뒤 어느날 설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해설사가 그 곳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그 느낌만이라도 떠오를 수 있다면.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다시금 찾아가 보고 확인해 볼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지역사랑은 조용히 퍼져나가리라 생각해 본다.
언제나 초봄의 색은 가늠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동구 가양동에 있는 우암사적공원내 남간정사(南澗精舍)에서, 둔산동 선사유적지에서, 송촌동 동춘당에서, 뿌리공원에서 문화유산해설사들이 주말이면 봄과 더불어 지역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춘아 <대전문화유산해설사>
○ 신문게재일자 : 200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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