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그 시대의 선택

이춘아 2019. 8. 8. 09:05

그 시대의 선택

2002.3.28.

이춘아

 

흘러간 한국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보다가 한창 젊은 시절의 최은희씨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1960년대 미인의 기준이었던 최은희씨의 얼굴은 당시의 표현으로 복도 많게 생겼고 후덕하게 생겼습니다. 솔직히 좀 퉁퉁한 얼굴인데 저 얼굴이 당대의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스타의 얼굴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인의 기준이 최근 몇십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불상(佛像)에 관한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불상의 모습들이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은 머리부분에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의 두광과 광배입니다. 좀더 공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만 불교가 전래되었던 초기에 광배가 부각되었다가 점점 둥글고 가는 선으로 처리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상은 크고 몸은 너무 날씬합니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왜 이렇게 과장되게 표현했을까 오늘의 나는 의아해 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관한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어려서 보았던 만화책과 동화책에 나오는 선녀들의 모습, 가늘고 긴 끈이 머리 위에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그러한 선녀의 모습이 거의 그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분벽화에 그려져있는 날아가는 듯한 비천(飛天) 모습에서 선녀를 보았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에밀레종(신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비천상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백제, 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모습들도 머리에 광채를 발하는 형상입니다. 요즘 저의 시선에 머무는 부분들이 이러한 것들인데 이러한 모습들은 기()가 뻗쳐나가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종교적인 권위의 중심을 기()가 뻗어나가는 주력하는데 초점을 두었던 시대였기에 몸은 최대한 작게 머리와 광채는 가능한 크게 부각하고자 했던 당대의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역작이라고 해석해 봅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같으면 내 마음에 안든다 또는 못생겼다고 했을 것을 적어도 조금은 사려가 생긴 오늘의 나는 사뭇 의아해 하다가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려 봅니다. 그 결론의 실마리를 선택이라는 단어에서 끌어내고 있습니다.  시대,  지역이 선택한 모습에 대해 때로는 국수적으로 때로는 지엽적으로 평가해버리는 오류를 경계하는 용어로 선택 떠올려봅니다. 가장 편안하다고 여기는 미소, 얼굴, 몸의 형체로 보이면 무심코 한국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내게 가장 익숙했기에 편안할  있는 미소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것을 지나치게 자랑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오류라고도 생각됩니다.

 

옛것을 복원하면서 과장되게 크게 설계된 건축물에 대해 고건축을 전공하신 선생님들은 비판을 합니다그러나 대개의 관객들은 크게 잘 만들었다고 칭찬합니다. 상반된 판단의 와중에서 의아해 하던 나는 어느 날 그 복원된 건축물 앞에서 아하하며 결론을 내렸습니다. 잘 만들었다고 말한 사람들은 그것을 만들 때 투여되었을 돈을 생각한 것입니다. 돈이 많이 들어간 것이 좋은... 그러나 고건축을 전공한 선생님의 시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원은 그 당시대의 예술가들이 선택한 그 기준으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오늘의 잣대로 마음대로 크게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쉽게 말할 수 있는 잘 만들었다는 돈이 많이 들었다로 직결되어 표현하고 있는 우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한편을 보아도 역시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를 좋다고들 합니다. 그것의 잘잘못을 떠나 자본주의식 가치기준은 역시 돈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의 보편적인 가치기준은 돈의 부피에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생각해봅니다. 작금의 예술가들이 선택한 이 시대의 가치기준은 평균하여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는 것입니다.

 

3천년전의 암각화를 어제 보고 왔습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태화강 상류 대곡천 절벽 바위에 새겨진 그림, 3천년전 당대의 예술가들의 작품입니다. 고래를 비롯한 바다동물과 표범이나 사슴 같은 육지동물 들을 포함하여 일상의 모습을 절벽바위에 새겨놓았는데 아마도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 같다는 추측입니다. 반구대 주변이 아주 절경입니다. 그 절경 가운데 절벽의 평편한 부분을 게시판으로 하여 당대의 기술자가 동원되어 제작하였고 3천년전의 우리 조상들은 기막힌 절경속에서 암벽 게시판을 보면 고래잡이와 동물사육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그 시대의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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