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경주 답사

이춘아 2019. 8. 8. 09:04


경주답사

2002.1.3.

이춘아

 

이번 경주 답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다른 나의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다. 사람이 공부 좀 했다고 일년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있다. 매년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나를 확인할 수 있다면 나이듦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이제는 출입을 금하고 있는 청운교 계단에 앉아 찍은 사진으로 추측컨대 나의 경주 불국사 첫 방문은 4-5세 정도였지 싶다. 그로부터 40여년동안 열번도 넘게 다녀왔을 불국사를 이번에야 제대로 구경했다는 생각이 든다. 3년전 신영훈 선생의 슬라이드 강의를 듣고 난 후 찾아갔던 불국사는 선생의 말씀과 선생이 감탄해 마지 않던 장면을 확인해보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신영훈 선생이 거듭 말했던 신라인들은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것의 의미를 이번에야 느낄 수 있었고 석가탑과 다보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처음 느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교과서적 강요에 의한 아름다움에 대해 암만 봐도 나는 모르겠다였다.

 

작년 가을 친구들과 함께 갔던 감은사지에서는 삼층석탑의 의미보다는 주변의 누런 들판에 더 감격하며 이것이 바로 한국의 색이다라며 사진을 찍어댔다. 이번 대전문화유산해설사들과 다녀온 답사는 이제까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들과는 다른 역사성에 근접해 있었다. 함께 간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보고 다녔나에 따라 각자의 느낌은 매번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더구나 우리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주었던 구품연지회 윤영진 해설사의 1시간 40여분간의 설명은 불국사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갖게 해 주었다. 비록 해설사의 설명에 의지해서 보고 듣느라 좀더 내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슬라이드나 다른 교육매체를 아무리 동원한다하더라도 이렇게 생생한 교육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문화유산해설사의 중요성을 인식케 해주었다.

 

불국사는 佛國寺였다.

요즘 하는 말로 불국사 건축물과 내용물의 컨셉은 부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참조로 상상하며 다시 가본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서 사천왕들에 짓눌려있는 마구니가 바로 나인 것 같아 겁먹으며 허위허위 반야교를 넘어 해탈교를 지나야 그 옛날 구품연지에 떠있는 수미산을 쳐다볼 수 있다. 저것이 바로 부처님 나라. 부처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가지.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을 통해 자하문(紫霞門-붉은 안개가 서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연화교와 칠보교 계단으로 안양문(安養門)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자하문으로 들어가면 대웅전이, 안양문으로 들어가면 극락전이 펼쳐진다.

 

구품연지에 서있었을 높다란 석축물이다. 자연석과 다듬은 돌이 절묘하게 어울려있다. 덤벙주춧돌 위에 그랭이질 하여 올려놓은 기둥만 보아오다 자연석에 맞추어 큰 화강암을 그랭이질 하여 올려놓은 솜씨에 감탄하며 옆으로 돌아올라간다. 회랑을 지나 범영루를 보고 다시 안양문에서 밖을 내려다 본다. 연화교 계단의 연꽃무늬에 다시 감탄. 진달래꽃 즈려밟고 오듯이 연꽃을 즈려밟고 일곱가지 보물계단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올라오면 극락세계인 극락전이다. 공사중이라 천막을 뒤짚어 씌운 극락전을 지나쳐 대웅전으로 건너간다. 대웅전 마당에 아! 석가탑이다. 다보탑도 있다. 그 아름답다고 하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늘 왜소하고 초라해보였는데 이 날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 내 눈이 달라진 것이다.

가로 세로 15cm, 20cm 될 듯 싶은 석등의 창을 통해 눈높이를 조절하면 대웅전 부처님의 얼굴이 가득 차 보인다. 절묘한 배려이다. 석가탑에도 그랭이질 흔적이 있다. 영취산에서 설법을 했다는 석가모니를 위해 산모양의 험한 바위돌에 맞춰 그랭이질 하여 기단을 올려놓고 여덟보살이 앉아서 설법을 듣고 있음을 연꽃무늬 주춧돌을 돌아가며 배치해두었다. 다보탑 역시 모가난 인간의 세계에서 수행과정을 거쳐 각이 떨어져나가면 팔각이 되고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원형으로 삼층을 형상화하였다. 섬세한 배려와 솜씨의 조화가 컨셉에 따른 컨텐츠이다.

 

탑은 무덤이고 그 무덤에 신체의 엑기스인 사리와 몸의 엑기스인 불교경전을 담아 보관하였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국사의 엑기스는 역시 석가탑과 다보탑이 아닐까 싶다. 나머지 건축물 역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조적인 형상일 수도 있다. 대웅전의 이미지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함이다. 토함산의 뜻이 안개와 구름을 먹고 토하는 산이듯 대웅전 처마밑 용은 물고기를 먹어 뱉어내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알파와 오메가에 이르는 영원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웅전 뒤 웅장한 건물이 무설전(無設殿). 진리를 가르치지만 말한바 없다고 하는, 가르치기는 하지만 결국 큰 진리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고 하는 기막힌 해석이 담겨있는 표현이라고 한다. 무설전을 뒤돌아가니 갑자기 깎아지른 축대를 만난다. 가파른 계단을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딛고 올라가니 관음전(觀音殿)이다. 날씬하게 서있는 관음상 뒤로 아주 섬세하지만 무시무시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 그림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이 그려져있다.

 

옆으로 내려가니 비로전(毘盧殿)이다. 진리의 모습이라고 한다. 부처님 입장에서는 진리를 깨우친 상태에서 시작하여 어리석은 중생에게로 내려가고 어리석은 중생은 깨우침을 통해 부처가 되는 그 만남의 점이다. 또 다시 옆으로 내려가니 나한전(羅漢殿)이다. 깨달음이 최고조의 경지에 이른 성인이 되는 곳이다. 기도도량처라고 한다. 다시 내려가니 법화전터가 있다. 책자를 보관하였던 곳인데 주춧돌만 남아있다. 이제 해설사 설명의 마지막 장소인 범종각이다. 아침에 28, 저녁에 33번 종을 친다고 한다. 28번은 수미산의 부처님나라로 가는데 28단계가 있고 33번은 도리천은 수평으로 33단계 33문을 닫는다고 한다. 신라종의 특징은 대나무형 음관과 비천상이 있는 모습인데 11개로 알려진 신라종 가운데 6개는 일본에 5개는 깨져서 못쓰는 종, 나머지 하나가 워낙 커서 일본으로 옮겨갈 수없었다는 에밀레종이라고 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751년 김대성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알려져있지만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니 이차돈이 순교하고 불교가 신라에 공인되었던 527년 그 이듬해 법흥왕의 어머니에 의해 창건되어 중창과 보완을 통해 774년 완성을 하였다. 246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1593년 임진왜란으로 금동불상과 석물이외의 건축물은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90여년간 중건, 중창되어 현재의 모습을 간신히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한다.

 

종교적 해석은 아직 멀고 멀지만 적어도 이번 답사에서 부처님 나라를 기리는 인간의 지고한 모습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한 것만도 보람이었다. 지고한 순정이 석굴암도 만들었다. 석굴암에 관한 글을 오늘 다시 읽으면서 감탄 연발을 했다. 답사갔던 우리들은 석굴암 주차장에서 석양을 보는 것으로 족하고 대전으로 향했었다. 그 다음날인 오늘 나는 하루종일 불국사를 다시 읽어내고 기록하였다. 해설사의 길은 아득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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