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화에 대한 믿음

이춘아 2021. 11. 2. 17:58

2021.11.2 화

평화에 대한 믿음

‘부산평화영화제’에 간다고는 했지만 영화제의 전체 개요를 알지 못한 채 흥분된 날뜀 같은 마음으로 일단 갔다. 모퉁이영화관 상영이라고 하니 광복동 어느 모퉁이 건물 한 층에 있으려니 했다. 광복동 한복판에 만들어진  버젓한 공간에 소규모이긴 했으나 제대로된 영화관이었다. ‘부산평화영화제’는 올해로 12회째이고, 부산광역시와 영화진흥위원회 후원에 부산문화재단, 청년작당소, 인디그라운드가 협력하고 있었다. 행사규모가 작지 않다. 7개국 27편 초청 상영이다. 올해의 슬로건은 ‘가까이 멀리 이어가다’. 포스터 그림의 작가의도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맞잡아 주는 손이 있다면, 그 연대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과 평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 

영화제에서 본 두 편의 영화 하나는 노숙자의 삶을 그린 다큐 <셀프 포트레이트 2020>이고, 또 하나는 온전히 북한에서 만든 영화 <우리집 이야기>였다. 이제껏 내게 ‘평화’라는 단어는 평화롭게 사는 것이되 순전히 나 개인의 평화와 관련한 것이었다. 평화영화제에 왠 노숙자? 왠 북한? 이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갖고 있는 평화이미지는 얼마나 편협된 것이었는지 느끼게 하였다. 포스터 그림 작가의 의도 처럼, "맞잡아 주는 손이 있어야 하고 연대가 있을 때 희망과 평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나에게는 없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3시간 분량의 다큐를 어떻게 다 보나 했는데 그냥그냥 2시간 넘도록 보고 있었다. 지치지 않고 다음 상영작을 보기 위해 중간에 나와 잠시 휴식하긴 했지만 지루한 다큐가 아니었다. 왜 지루하지 않았을까? 한 때 잘 나가던 영화감독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노숙자로 전락한다. 알콜 중독에 찌들어있지만 그는 자유를 얻었다고 여기고 있고 계속 영화를 찍겠다는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 몇 개의 단어이지만 고주망태가 되어도 그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한다. 몇 년에 걸쳐 찍었다고 한다. 노숙자들을 따라다니며 찍어서 화면은 계속 흔들려 눈이 아프지만 중간에서 일어나지 않고 보게 된다. 영화 속의 노숙자는 2000년도에 <자화상>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베니스 단편 영화제에 초대되기도 했었다. 그가 세상의 어느 지점에 빠지고 난 이후부터 일이 풀리지 않고 노숙자로 살게 되지만 영화제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노숙자’ 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자세히 보지 않았고 뭉뚱그려 그들로 보아왔었다. 다큐영화 형태로나마 그들 한명 한명을 지켜보니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들도 먹고 마시고 잔다. 그들도 각자의 생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막연히 그들을 경계의 대상으로, 길에 버려진 더러운 똥을 보듯 사람을 보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노숙자들과 함께 예배를 본다. 때로는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피해서 앉는다.(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그들만의 냄새를 떠올리게한다) 그들은 예배 마치자마자 밖으로나와 골목에서 담배를 피운다. 눈살이 찌뿌려지는 장면이다. 노숙자들은 바로 몇 십년전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온수가 나오는 아파트에서 좀 깨끗하게 산다고 우리는 그들의 냄새를 피해서 다닌다. 

2016년 북한에서 ‘예술영화’라는 장르로 제작된 <우리집 이야기>는 이웃, 공동체, 국가가 개인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한다. ‘국가제일주의’라는 슬로건이 2016년 전후하여 북한이 가장 강조하는 단어이고, 이 슬로건의 대표적인 홍보영화라고 한다. 6.25 전쟁 당시 발생된 고아들을 북한도 남한도 외국로 보냈다. 몇년 후 북한은 외국에 맡긴 고아들을 데리고 왔다. 남한은 외국에 팔았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 생각이 났다. 북한은 졸지에 고아가 된 가정의 아이들을 실제로 돌보았던 장정화 라는 여성을 모델로 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국가는 인민들을 버리지 않는다, 는 국가제일주의. 새삼 '국가'라는 단어가 전체주의를 떠올려 거부감이 일지만 영화의 내용은 따뜻하다.

노숙자. 국가가 방치하여 버리고 복지기금으로 얼마씩 지원해준다. 북한의 고아들을 이웃이 마을이 국가가 보살펴준다. 두 영화는 대조적이었다. <셀프 포트레이트 2020>에는 이웃도 없고 마을도 없고 국가도 없이 복지기금 몇푼 던져준다. <우리집 이야기>는 한국인의 따뜻한 보살핌 정이 보인다. 국가가 비록 홍보용으로 사용하긴 했으나, 내용은 따뜻했다. 우리들이 버렸던 정이 그리웠는지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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