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관(1924~2022):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 [사상계] 주간을 역임.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근대사상사를 공부했으며 도쿄여자대학교 교수를 재냈다.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국내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세카이世界]에 15년 동안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했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한국의 투쟁을 전 세계에 전하고 국내외 양심세력의 국제적인 연대를 일구어냄으로써 한국민주화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
빨간 연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보통학교 5학년 이른 봄, 평양까지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 여행 소감을 반 친구들에게 말하던 때의 일이다. 나는 평양박물관에서 고구려 벽화 또는 낙랑군 칠기를 본 소감을 말하면서 이 옛 문화의 맥이 이제는 단절된 채 일본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을 바라보니 왠지 눈물이 흐르더라고 했다. 선생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흐뭇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중학교에 진학시킬 여력이 없었으므로 관비로 교육받을 수 있는 평양사범학교에 보내려고 했지만 선생은 이에 극력 반대하셨다. 그는 이 어린것에게 일생 보통학교 교사로 지내야 하는 운명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좀더 가능성이 열려 있는 다른 길을 택하게 해야 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러나 공립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매년 일정한 세금을 낼 수 있는 자산이 있는 가정이어야만 했다. 우리는 세금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학비를 보장해주는 자산가를 보증인으로 세워야 했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친분 있는 의사 등 유력자들을 찾아가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그때 선생은 담임 입장의 긴 소견서를 써서 입학원서에 첨부했다. 소견서 용지에 작은 글자로 빼곡하게 썼던 그 소견서가 지금도 눈앞에 아련히 떠오른다. 그것은 선생이 모든 것을 보증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가 이런 소견서를 받아본 것은 아마 개교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으리라. 선생은 납세액이 없는, 자기 토지도 집도 없는 가난한 홀어머니가 평양이라는 도시에 아들을 내보낸다고, 이를 위해 평양으로 이사를 가서 남의 집을 빌려 하숙을 친다고 했다. 이 어머니에게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선생은 1년간 자신의 봉급 45원에서 4원50전을 떼어 매달 수업료를 대신 납부하겠다고 서약했던 것이다. 그는 정말 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눈내린 정주 역 플랫폼에 내렸을 때 그는 천천히 걸어와서 누구보다도 먼저 나를 껴안았다. 나는 흐느끼면서 선생과 같은 인물이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정 선생은 그후 그야말로 일생 동안 내 눈앞에 나타나 교사로 살아온 나를 격려해준 것 같다.
한 가지만 더,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일이 있다. 1937년 이른 봄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모두가 헤어져야 하는 날, 그야말로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때였다.
교실에는 60명 정도가 있었을까. 선생은 먼저 중학교 진학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대다수 아이들을 위로하는 말을 했다. 인생이란 상급학교에 가는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나도 사실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고 탄식했다. 그는 수험생들에게 연필 두 자루씩을 선물했다. 지금도 그때 선생이 하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처음에 이 빨간 연필로 쓰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가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다 닳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연필로 써도 좋다. 빨간 연필, 이것으로 이 선생의 마음이 너희들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뜨겁게 타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기 바란다…….”
선생의 말은 한 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던 것 같다. 6년간 정성을 다해 가르친 아이들이 이제 떠나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책상에 엎드린 채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중학교 시험을 보러 떠나는 아이들도 그러지 못한 아이들도….., 땅거미가 점점 교실 안에 드리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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