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고민하는 힘'

이춘아 2022. 4. 9. 05:56

강상중, [고민하는 힘](이경덕 옮김), 사계절, 2009.

'고민하는 힘'

어머니의 경우 전쟁과 경제적 곤란, 물자의 궁핍함, (재일 한국인에 대한 ) 차별 등이 고민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격심한 혼란과 가치의 전도가 일어나고 생사의 경계에서 헤매야 할 정도의 곤란한 일들이 어머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덮쳤습니다. 그런 ‘극단적 시대’가 어머니의 인생과도 중첩되는 20세기라는 시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현대라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일 것입니다. 최근 10년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의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물론이고 오락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초월해서 한 덩어리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대의 특징으로 ‘자유’의 확대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인터넷 등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어디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도 있으며, 거기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쉽게 향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자유가 사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유가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행복을 느끼고 맛보며 살고 있습니까? 만족감과 안도감을 맛보고 있습니까? 국경없이 확산되는 정보 네트워크와 자유롭고 글로벌한 시장경제. 우리는 그 풍요로움과 편리성에 주목하며 그것을 많은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약속의 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로운 빈곤이 퍼져 나가고 있고, 빈부 격차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가 새로운 정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꼼꼼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해안에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거품처럼 덧없어 보입니다. 다른 곳은 차치하고 일본과 한국만을 놓고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높은 자살률의 증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덧붙여서 우리에게 큰 중압감을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만을 놓고 볼 때, 경제의 개념과 사상, 테크놀로지 등은 유행이 바뀌는 것처럼 눈부시게 변해 왔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와 같은 것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맞춰 인간 또한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생각에 빠져 있으면 뒤처지고 맙니다. 지금의 상황을 다른 말로 하면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변할 것이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랑이나 종교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을 찾습니다. 이렇듯 현대인은 상반된 욕구에 정신이 조각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백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개인’이라는 큰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 ‘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인간은 왜 개인으로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렇습니다. 

개인이 지닌 고통의 근본이 되는 ‘자아’라는 것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줍니다. 개인에게 크게 얽혀 있는 ‘자유’에 대한 가르침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변용과 ‘돈’의 문제에 대한 주목할 만한 지적도 있습니다. 거기서 발을 뻗어서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좋은 안내자가 됩니다. 

참고로 위에 열거한 물음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살았던 시대에는 ‘지식인의 특권’과 같은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보와 지식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고민 또한 그때보다 더 보편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유화와 정보화, 세계화가 동반된 변화 속에서 ‘개인’의 아픔은 더욱 가혹해졌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했습니다. 그들이 살아간 반세기에 이르는 생애 곳곳에는 그들이 ‘고민하는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실마리로 삼아 거기에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섞어서 ‘고민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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