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실크로드 답사기 4: 황하가 황톳물이 된 이유

이춘아 2019. 8. 8. 09:54

7박 8일간의 실크로드 답사기

황하가 황톳물이 된 이유

2003.11.6.

이춘아



황하와 거대한 유가협댐을 거쳐 병령사 석굴로


78일의 실크로드 답사는 거창한 것 같지만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이동시간이 2/3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녀올때는 정말 본 것이 별로 없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안에서 난주까지 한시간 가량 걸리는 밤비행기를 탔습니다.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는 황하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그 유명한 황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황하의 중하류에서는 강의 이쪽과 저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고 하나 해발 15백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난주에서 보는 황하는 상류임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폭과 유사합니다. 다만 물의 흐름이 마치 홍수로 인해 불어난 황토빛의 급류 같았습니다. 돼지가 떠내려오지 않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난주(蘭州)에 도착한 다음날 오천산을 구경하고 병령사 석굴로 향하였습니다. 이날 마침 토요일이라 오천산 공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휴일을 즐기는 많은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안에서 난주로 오니 실크로드로 가는 길목이라는 느낌을 좀더 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황토먼지 앉은 난주 청포도 '꿀맛'

 

난주시는 전형적인 대도시이지만 서안에 비해 훨씬 건조지대이며 주변은 황토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도 외양에서부터 다양해진 듯 합니다. 한족 외에 회족, 만주족, 티벳족, 몽고족 등 40여 민족들이 살고 있다고 하며, 당나라때 난주란 이름을 갖게 된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번영했던 곳입니다.

 

불쌍할 정도로 헐벗은 붉은 색의 황토산으로 인해 황하가 저토록 황톳물이 될 수 있구나 가늠하게 합니다. 연간 강수량이 적어 나무는 자라기 힘들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의 물이 인구 4-5백만명의 대도시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병령사 석굴을 보기 위해 거의 2시간 가량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 버스안에서 청포도와 배, 바나나 등을 먹는데 배는 모과같이 생겼으며 속살은 사과 비슷하게 부드러워 시원한 맛으로 먹었는데 청포도가 여간 맛있는게 아닙니다.

 

씻지 않은 포도라 물에 적신 수건으로 겉을 닦아 먹는데 황토먼지가 포도에 붙어 있었던지 금방 누렇게 됩니다. 집에와서 황토묻은 수건을 삶아보았으나 점점 더 검은색이 됩니다. 황톳물에 아예 담구었다가 염색해 올 것을 그랬습니다. 하지만 난생 처음 그렇게 단 포도는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 맛나게 먹었습니다. 씨 뱉어낼 필요없고 닦아서 껍질째 먹었는데 지금도 그 단맛이 입안에 도는 듯 합니다.

 

난주 포도도 이렇게 맛있는데 연간 강수량이 16mm라는 투루판의 포도는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했으나 난주에서 돈황을 거쳐 투루판으로 가니 그곳은 이미 포도수확이 대부분 끝나고 건포도를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캘리포니아산 갈색의 포도가 아닌 청포도로 말린 건포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투루판 먹여 살리는 '건포도'시장


투루판의 포도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완전 오아시스 지대인 투루판은 포도와 목화재배로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알이 작고 씨없는 청포도는 건포도로 팔려나갑니다. 포도원 부근 언덕에는 포도말리는 창고가 서 있습니다. 포도원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방사림(防沙林)역할을 하는 겹겹의 백양나무를 바로 옆 언덕에 건포도창고가 있습니다. 창고는 황토를 벽돌처럼 빚어 그대로 말려 집짓기 형태로 쌓아올렸는데 격자무늬로 통풍구조를 만들어 뜨거운 사막바람이 불어오도록 하였습니다.

 

황토흙으로 빚은 창고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면서 건포도로 말려집니다. 황토창고속에서 자연바람에 말린 건포도가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단맛이 질리지도 않으며 손에 찐득한 것이 붙지도 않아 오가는 차안에서 많이 먹었습니다. 버스타고 지나가다보니 건포도 도매시장인지 각종의 건포도가 쌓여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퍼담아야 될 것처럼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투루판 지역은 건포도 수입으로 살아간다고 할 정도로 수확량이 많은데 우리는 맛없는 캘리포니아산 건포도만 수입해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광지마다 여러 가지 종류의 건포도와 말린 살구, 대추, 호두 등을 쌓아놓고 팔고 있습니다. 건포도도 가격대가 다릅니다. 정교한 맛의 차이가 있는 것 같으나 구별하기 힘들었습니다.


 

중국 최대 크기 자랑하는 유가협 댐과 병령사 석굴

  

병령사 석굴로 가기 위해서는 난주시에서 2시간가량 버스타고 유가협댐으로 가서 그곳에서 쾌속정으로 한시간 가량 더 들어가야 합니다. 중국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유가협댐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입니다. 댐 선착장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분위기로 보면 매운탕을 먹어야할 것 같은데 얼큰한 매운탕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래도 잉어 탕수가 있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박물관의 학예사 선생님은 잉어탕수를 드시지 않으십니다. 생선을 드시지 않으시냐고 하니까 창녕 성씨는 잉어와 관련있는 집안내력이 있어 잉어만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일도 있더군요.

 

우리 일행은 쾌속정 몇대에 나누어타고 물을 가로 지르며 석굴을 향해 갔습니다. 3개의 물줄기를 막아 만든 유가협댐은 폭이 4km에다 길이가 65km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댐의 주변은 황토빛보다 붉은 민둥산들입니다. 한참을 가니 촛대바위같은 절경의 산들이 나오고 병령사 석굴에 도착하였습니다. 작년에 낙양(洛陽)의 용문석굴을 가보았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습니만 실크로드의 최종 기착점이라고 하는 경주의 석굴암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1600년전부터 굴을 파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사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티벳족이 난주 일대를 점령한 후부터 티벳어로 십만불(十萬佛)을 뜻하는 병령사(炳靈寺)석굴로 불리고 있습니다.

 

석굴은 북위시대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1천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하며 크고 작은 석굴과 감의 수가 183개이며 이 속에 694체의 석상과 82체의 소상이 있다고 합니다만 상당부분이 훼손되어 있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으며 높이 27m 나 되는 석조대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총립해 있는 기암괴석의 비경과 서역의 느낌을 주는 석굴을 보았던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중국의 삼대석굴로 불리우는 감숙성 돈황의 막고굴, 산서성 대동의 운강 석굴, 하남 낙양의 용문석굴 등의 석굴은 한국인의 마음에 새겨진 화강암 재질의 석굴이 아닌 단단한 흙굴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흙이라하여도 부슬부슬한 흙은 아닙니다. 아주 차진 흙이라 화강암보다는 파내기가 쉽다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갔을 때 마침 무엇인가 보수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는데 흙벽을 파는데 쉽게 파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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