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실크로드 답사기5: 뜨거운 바람 맞으며 모래산으로

이춘아 2019. 8. 8. 09:57

]7 8일간의 실크로드 답사기

뜨거운 바람맞으며 모래산으로

2003.11.19

이춘아


 

 

실크로드 답사를 다녀오고 며칠 후 고속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우리나라는 온통 오아시스네였습니다. 적당히 비가 와서 산천초목을 적시며 사람들을 감싸 안아주는 모든 환경이 자연인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우리에게 실크로드 답사는 처음으로 이 지구상에는 습윤지대와 건조지대가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대가 습윤하다는 표현조차 낯설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 살아온 물이 건조지대에 가서는 그 모든 것이 사람의 손을 거쳐 물을 끌어오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생명수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사막의 모습

 

오아시스라고 하는 이름이 내게는 신기루 속의 야자수 나무와 샘이 있는 다소 '낭만적인' 것이었다가 이제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강인함'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차창 밖 풍경은 어쩌면 저렇게 사람손이 닿지 않고도 녹음이 우거질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난주에서 돈황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비행기로 서쪽으로 이동해가면서 땅은 점점 건조지대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로 내려다본 사막은 난주에서 보았던 황토에서 건조한 모래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저것이 이른바 고비사막이구나, 저것이 오아시스라는 것이구나, 저곳이 기련산맥이란 것이구나, 저것이 만년설이란 것이구나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단어들의 실체를 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돈황 공항은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난주공항에서 때 아닌 시간을 허비하였기에 우리 일행은 서둘러 전용버스를 타고 돈황고성과 양관이라는 곳에 들렀다가 명사산 월아천으로 갔습니다.

 

모래지역이라 하여 당나라 때 사주(沙州)라 불리었던 이곳에서 당시의 성의 모습을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인들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영화세트장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영화세트장이 관광코스가 되었습니다. 양관에서 내려다본 서쪽의 땅은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사막지대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부터 서쪽은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그곳을 벗어나 서쪽으로 가면 출세(出世)하였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명사산 월아천에 마련된 영화세트장

  

서역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또는 남쪽 길을 선택해야했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은 천산산맥이 있어 또 다시 천산산맥의 북쪽 길 또는 남쪽 길로 나누어집니다. 이 길을 오아시스로()라고 하는데 오아시스 지역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길이라고 합니다. 오아시스지역에는 철저하게 인간이 만든 문명이 존재하였던 반면 오아시스와 오아시스 사이는 오로지 낙타에 의지해서만이 인간이 지나갈 수 사막지대가 있습니다. 오아시스로가 곧 실크로드였습니다. 고대부터 문명의 교류를 가능케 했던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실크가 로마로 건너가 실크 옷을 유행시켰으며 종이와 화약제조술이 전해졌고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유리, 서커스, 천마, 포도 등이 전해왔습니다. 경주 대릉원의 4-5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유리용기들이 로마에서 건너왔을 것이라고 하며, 유리구슬에 새겨진 얼굴의 모습은 중앙아시아의 위그루인이라고 추정하는 것으로 보아 이 오아시스로를 통해 실크로드의 최종 기착점은 신라 경주라고 주장됩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둘러싸고 있는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눈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어느 지점에서 솟아올라 오는 지역을 오아시스라고 하였으며 사람들은 천연의 오아시스 물을 지하 수로로 연결시켜 농사를 짓고 살아갈 수 있었으며 크고 작은 도시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래 쌓여 만들어진 '명사산'

  

명사산 월아천에 가면 낙타를 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명사산(鳴沙山)은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형성된 산으로 바람에 날리는 모래소리가 관현악기의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월아천(月牙泉)은 명사산 아래 초생 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로 남북 길이가 약 100m 폭이 25m 정도 되는 호수입니다. 맑은 파란색의 물이 모래 색과 어울려 신비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모래바람이 불면 하루저녁에도 지형이 바뀐다는 이 곳에 저러한 호수가 몇 천년간을 그대로 유지해왔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시시각각으로 어두워가는 명사산 월아천을 찍기 위해 계속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점점 석양빛은 소멸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일행들 대부분은 명사산에 힘들게 올라가 미끄럼타고 내려오는 시간동안 몇 사람은 남아 월아천과 명사산을 사진기에 담아내기 바빴습니다. 명사산 등성 너머 역광의 모습으로 낙타 대상들이 지나가고 있는 듯한 환상을 보는 듯 했습니다.

  

기원전부터 이 길을 다녔을 낙타대상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멀리서 본 월아천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신기루가 아닌가 하여 눈 비비며 낙타를 재촉하며 다가왔을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져 초생달이라도 떠오를라치면 월아천에 비친 초생달의 모습은 작열하는 태양열 아래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그대로 녹아내리게 하는 오아시스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