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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관저동 영화 모임에서 ‘계춘할망’을 보았다. 이 영화를 또보게 됐네 하며 약간 실망했지만 다시 영화에 빠져들었고, 눈물을 이전 보다 많이 흘렸다. 여러 번 보아도 좋은 영화 중 하나인가 했었다. 다시 생각하니 모옌의 “나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쓰기로 했다’”라는 글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을 중심으로 복기해보아야겠다 생각은 했었다.
얼마 전 인상깊게 본 ‘다 잘 된거야’를 인물 중심으로 열거해 보았다.
큰 딸: 노트북에 글을 쓰다가 전화를 받고 나간다. 50대 여성. 나중에 작가였음을 알게 되었으나, 상황때문인지 글을 쓴다거나 작가로서 고뇌? 그런 것들이 별로 없어 보였다. 표정연기가 미세하게 연출되었다. 85세의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반신마비가 왔다. 사랑을 받고 자란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영화를 보면 서양사람들도 가족간의 사랑이 절절하네, 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무지한 비교이다. 자녀는 없는듯하고 남편은 출장 중이고 간혹 등장하긴 하지만 사위는 장인과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큰 딸이 영화 원작자였다.
작은 딸: 처음에는 작은 딸이 큰 딸처럼 보였으나, 점점 둘째 같은 모습을 보게 된다. 맏이라는 책임감 같은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가 큰딸을 더 좋아해서 그런지 작은 딸은 좀 밀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아들 딸이 있는 건 보여주었으나 남편은 끝까지 보이지 않았다. 음악과 미술을 좋아한 아버지는 마지막 죽음 날짜를 미루면서까지 손자의 연주회를 보아야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살짝졸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손자의 클라리넷 연주를 끝까지 본다. 음악을 하는 손자에 대한 사랑이 크다. 여동생에게 왜 할아버지 면회를 가지 않느냐는 손자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오빠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할아버지는 손자에 대한 편애가 있었다.
아버지: 85세의 할아버지. 갑작스런 반신마비로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빨리 죽게 되길 바란다. 재산도 어느 정도 있어서 스위스에서 안락사 할 수 있음에 안도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것도 못하겠다” 라는 말을 한다. 장인장모가 있는 묘소에 같이 묻히고 싶어하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이 결혼할 때 장인장모가 동성애자라고 하여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딸에게 푸념하듯 말한다. 자신의 부인도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한 부인이 한번은 찾아오긴 했으나 부인은 냉냉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가버린다. 아버지의 연인이 찾아와 면회하고 싶어하나 딸들이 못만나게 한다. 딸들은 스위스로 떠나기 전날 연인을 만나게 해준다. 오랫동안 나오지않아 문을 살짝 열어보니 아버지 무릎에 기대어 앉아 울고 있는듯 했고, 아버지는 그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고 있다. 딸은 얼마전 엄마에게 물었다. 그런 아버지와 왜 결혼했냐고 하니 엄마는 ‘사랑했었으니까’ 라는 말을 했다. 무릎에 기대어 울고 있는 남자연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사랑했었으니까’를 떠올리며 그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듯 했다. (나이 들어 비로소 관대하게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다.)
어머니: 몸이 불편하긴 하나 아주 냉냉한 표정의 노인.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지팡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는 하지만 집 안의 분위기로 이전에 조각가였음을 보여준다. 동성애자인 남자를 사랑하여 결혼하여 두 딸도 낳았으나 아마 계속 남자 연인이 있었던듯 남편과 헤어져 살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장면이 많지는 않았으나 영화를 본 이후 가장 많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사랑으로 극복해내리라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하여 살긴 했지만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는 남편을 지켜보기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차가운 얼굴의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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