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감정의 또 다른 이름, 스트레스

이춘아 2023. 4. 22. 00:14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최호영 옮김), 생각연구소, 2017.


(375~378쪽)
당신이 과제 5개를 즉시 처리하려고 할 때, 상사가 내일 할 일은 이제 처리했어야 했다고 말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당신에게 일어난 그 무엇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외부세계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 스트레스를 구성한다. 학교에서 새 과목을 학습하는 도전 같은 스트레스는 긍정적이다. 가장 친한 친구와 다투는 것 같은 스트레스는 부정적이지만 견딜 만하다. 만성 스트레스인 지속적 빈곤, 학대, 외로움 같은 스트레스는 몹시 해롭다. 스트레스는 다양한 사례의 개체군이다. 균형이 깨진 신체 예산으로부터 당신이 경험을 구성하기 위해 적용하는 것이 ‘행복’ 또는 ‘공포’ 같은 개념이다.

당신은 감정을 구성하는 것과 똑같은 뇌 매커니즘을 통해 ‘스트레스’ 사례를 구성한다. 당신의 뇌는 외부 세계와 관련하여 당신의 신체 예산을 예측하고 의미를 구성한다. 이런 예측은 내수용 신경망으로부터 발화해 똑같은 경로를 따라 뇌에서 신체로 내려간다. 반대로 신체에서 뇌로 감각 입력을 운반하는 상승 경로는 스트레스 경로 및 감정 경로와 같은 것이다. 똑같은 쌍의 신경망, 즉 내수용 신경망과 통제 신경망은 이것들의 똑같은 역할을 한다. 감정 연구자와 스트레스 연구자들은 이런 유사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스트레스와 감정이 독립되어 있기나 하듯이 스트레스가 어떻게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감정이 어떻게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 경향이 있다. 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둘의 차이는 최종 결과이다. 즉 당신의 뇌가 당신의 감각을 스트레스가 많은 것으로 범주화하느냐 또는 감정적인 것으로 범주화하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예측성 뇌는 주어진 상황에서 스트레스 또는 감정의 사례를 구성하는가? 아무도 모른다. 당신의 신체 예산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수록 당신은 ‘스트레스’ 개념을 더 범주화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억측이다. 만약 당신의 신체 예산이 장기간 균형을 잃고 있으면 당신은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할지도 모른다(신체예산의 만성 적자는 종종 스트레스로 진단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질병을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만성 스트레스는 당신의 신체적 건강에 해롭다. 만성적으로 균형을 잃은 당신의 신체 예산 때문에 관련 뇌 회로가 개조되면, 이것은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과 통제 신경망을 말 그대로 갉아먹고 위축시킨다. 정신적 질병과 신체적 질병 사이의 고전적 구분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기로 하자. 과학자들은 여전히 면역체계, 스트레스, 감정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아는 것도 몇 개 있다. 누적된 전체 예산 불균형(예컨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영양가 있는 음식, 조용한 수면 시간 등의 기본적인 필수 조건을 박탈당한 어려운 처지에서 성장하는 것) 또한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 구조를 변화시키고, 뇌를 재배선하며, 신체 예산을 정확히 조절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마치 전쟁 지역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신체 예산 관리 부위가 왜소화된 채 성인기를 맞게 된다. 다툼 또는 악담이 난무하는 흉흉한 집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사춘기 소녀의 염증을 증가시키고 아이를 만성 질병으로 향하는 궤도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신경망 발달에 있어서 거의아동 학대나 아동 방임만큼이나 나쁜 것이다. 약자 괴롭힘의 표적이 되어 괴로움을 당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약자 괴롭힘의 표적이 된 아이는 성년기에도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의 염증 반응을 보인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온갖 정신적 질병과 신체적 질병에 잘 걸린다. 이런 것들은 균형을 잃은 신체 예산이 당신의 뇌에 새겨져 평생 심장병, 관절염, 당뇨병, 암, 그 밖의 질병에 걸릴 위험을 더 높이는 수많은 방식중 하나다.

감성 지능이 더 높은 암환자들은 더 낮은 수준의 전염증성 시토킨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환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주 범주화하고  명명하고 이해한다고 말할 때 그들은 전립선암으로부터 회복되는 중에 또는 스트레스가 많은 사태 후에 시토킨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더 적었고, 최고 수준의 순환성 시토킨은 이름이 붙지 않은 많은 정동을 보인 남성들에게서 발견되었다. 또한 자신의 감정에 분명히 이름 붙이고 이를 이해하는 여성 유방암 생존자들은 더 건강하고 암 관련 증상으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는 일이 더 적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내수용 감각을 감정으로 범주화하는 사람들이 허약한 건강 상태를 초래하는 만성 염증 과정으로부터 더 잘 보호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