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독의 발견'은 2020년 서초여성가족플라자에서 책소개를 의뢰하면서 시작되어 2022년까지 총14회 진행되었습니다. 시나리오 원고와 제작된 유튜브를 올립니다. ㅡ이춘아
<낭독 주요내용>
- 책 선정 사유 및 소개,
- 주요부분 발췌하여 낭독
- 낭독 소감과 책이 주는 의미
- 책 선정 이유/ 2:35
'낭독의 발견’ 네번째 시간은 [체리토마토파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일기 형식으로된 프랑스 소설입니다. 90세 잔 할머니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소제목으로 일년간 쓴 일기입니다.
50대인 작가 베로티크 드 뷔르는 90세 잔 할머니가 되어 일기를 써내려갑니다. 이 책을 읽던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반 감금상태였던 3월에서 6월에 걸쳐 매일 조금씩 읽었던 때였습니다. 상황이 다소 나아진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당시의 감흥과는 다릅니다. 프랑스 시골에 사는 아흔 살의 할머니가 혼자 살면서 하루하루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일기로 풀어나가는 삶의 모습이 어쩌면 당시의 나 인것 같기도 했고,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주변에서 보았던 것이기에 상상력을 가동하여 프랑스의 시골이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도 충분히 설득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일기를 써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웃의 이야기, 자녀에 대한 이야기에서 때로는 과거를 넘나들며 길어진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끌어내게 하는 일기 라는 장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한 때는 일기를 열심히 썼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놓치고 나니 일기도 못쓰고 있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나의 일기인데, 그것마저 글쓰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내 삶을 기록한다는 것,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 일기를 쓰고, 내 삶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갈 수 있다면 일기는 글쓰기의 가장 쉬운 접근 방식이 될 듯 합니다. 소설의 멋진 대사가 아닌 소소한 사건의 순간순간을 느끼면서 낭독해봅니다.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다, 라는 자신감도 따라 와 준다면 은둔의 시간 겨울을 맞이하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낭독 부분 발췌 / 3:05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로티크 드 뷔르, [체리토마토파이](이세진 옮김), 청미.
2019. 8월 29일 토요일
한번은 저녁에 소파에 앉아 있는데 딸이 컴퓨터로 손자들 사진을 잔뜩 보여줬다. 큰손자는 지금 아일랜드에 가 있다. 그리고 작은손자는 아르카숑에서 열리는 여름 캠프에 갔다. 딸은 그러고 나서 근사한 풍경, 가족, 친구, 손자들 친구, 심지어 자기 친구들의 아들딸 사진까지 차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자기 가족도 아닌 사람들 사진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단 말이야? 심지어 그냥 이름만 아는 사람 사진도 가지고 있다? 딸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이거든요.”라고 대답했다. 난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컴퓨터에 접속만 하면 모두의 소식을 받아볼 수 있고 그들이 뭘 하고 사는지, 어디에 갔는지, 누구랑 있는지, 나아가 가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알 수 있다니! 딸은 페이스북 덕분에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을 찾았다고 했다. 비시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소식까지 알게 됐다나.
나는 그 말을 듣고 흥분해서 나도 페이스북이라는 걸 하면 젊었을 때 친구들, 그러니까 결혼 전에 파리에서 알았던 친구들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 가령 뤼베크 기숙사 욕탕에서 함께 럼주를 물래 마셨던 욜랑드 드 레이날을 찾을 수 있을까? 딸은 미소를 지었다. 내 옛 친구들이 살아 있으면 아흔 살은 됐을 텐데 그 연령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하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면서....
11월 9일 월요일
기운을 차려야 한다. 어제 저녁에는 옛 생각에 빠져서 잠시 우울했다. 장밋빛 과거는 아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생을 아직 3분의 1밖에 살지 않았다. 격동의 세월이 먼저 와서 그 후의 행복한 시절은 소강상태처럼 느껴졌지만, 어쨌든 이런 마음 상태는 나에게 이로울 게 없다. 집 밖으로 좀 더 자주 나가고 차도 다시 몰아야겠다. 무미건조한 회색의 11월이 내 머릿속까지 해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나이에 칙칙하고 우울한 생각은 치명적일 수 있다. 의사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을 보면 백이고 백 사고방식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천년만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죽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다.
- 낭독 후 소감 및 감상평/ 1:12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다, 딱히 무슨 에피소드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소설을 쓸 수 없지만 일기는 쓸 수 있고, 내가 쓴 것을 낭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게 합니다. 잔은 6월19일 일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 기나긴 생의 끝자락에서 하나도 특별치 않은 생활을 글로 적어두는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는 욕구 때문인가? 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돌아볼 나이가 아니다. 늙어버린 머리와 닳아빠진 심장으로 무슨 글을 쓴다고. ..... 정말로 일기를 썼어야 했던 나이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라고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습니다.
이 책을 집에서 각자 조금씩 낭독했던 우리 고사리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일기를 써보려는 의지를 불태웠는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 . .
서초여성가족플라자 제작 동영상
https://youtu.be/4YJ56731QiE?si=AwK_XrkfebNrx4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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