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풍아송 風雅頌](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2014.
한 사람이 평생 쓰는 글은 한 가닥 선이라 할 수 있다. 하루 또 하루 시간 위에 새겨지는 생명의 시말이 아무리 구불구불하다 해도 이는 한 가닥 선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때로는 생명 속에서 생명 이외의 것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라는 게 바로 그런 경우다. 다시 산다는 건 이전에 지나간 생명의 연속이다. 하지만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의 그 짧거나 긴 죽음은(내가 말하는 것은 쇼크나 혼절, 가사상태 같은 게 아니라 진정한 죽음이다) 완전한 생명의 과잉이자 열외상태다. 생명의 뿌리 자체를 초월하는 ‘인생’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죽음도 그 또는 그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풍아송]은 이처럼 길고 긴 인생과 죽음에 관해 쓴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탄생은 내 생명 전체를 관통하는 글쓰기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작품이 되었다. [풍아송]은 대학에 대해, 교수들에 대해,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의 나약함과 무력함, 비열함과 불쌍함에 대해 쓴 작품이다.
또한 물질과 금전, 권력에 대한 그들의 타협과 숭배, 이상과 욕망의 이율배반, 저항과 탈피의 불화, 기개와 교태의 갈등…. 같은 것에 관해 쓴 작품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복잡한 상태는 지식인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어쩌면 이 세계의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이 세계와 전 인류의 일상과 달리 오늘날 중국에서 줄곧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일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고 상상하기 힘든 야릇한 일들이, 사실은 지식인들이 그 무엇도 반대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거나 앞정서서 몸소 자기파멸과 타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국가와 사회, 권력과 당파, 금전이 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으로 자신을 만들어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타협하고 마음대로 다양한 형태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사유과 역사의식, 가치관을 지닌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늘의 중국과 중국인들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중국인들이 어찌 이 모양이 되었을까?!”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다.
몇 년 전 중국에서 이 책이 출판되고 나서 당시 벌떼 같은 비평과 비판, 평론에 부딪쳤을 때, 나는 방금 앞에서 했던 말을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풍아송]은 내 정신적 자서전이라고, 나 자신에 대한 따돌림이자 비판이라고만 했다. 이는 나 역시 감히 미워할 수 없고, 감히 사랑할 수 없고, 감히 비판하거나 인정할 수 없는 지식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에서 [풍아송]을 출판하면서 서문에 이런 얘기를 쓴 것은 이제 와서 내게 용기와 지략, 깨달음이 있음을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이 책을 썼다는 것이 그 제재와 사상, 함의를 놓고 보든 아니면 언어와 상상, 구조와서사를 놓고 보든 간에,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내 생명에 한차례의 한계촉과와 넘쳐흐름이 일어났었고, 그리고 그 결과 내 작품을 좋아하는 한국 독자에게도 이런 뜻밖의 열독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지식인 소설’ [풍아송]을 그 시기에 썼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지금 이런 소설을 쓴다면 이미 시의가 지나버리고 상황도 변해 있어 절대로 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번역자와 출판사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분들의 노력은 내 글쓰기에 대한 지지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과 다른 나라들의 지식인 및 ‘지식인 소설’의 사유에 대한 공통인식이자 공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7월17일 베이징에서 옌롄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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