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체감 온도

이춘아 2019. 8. 8. 11:16


미국통신21 - 체감온도

February 16, 2000

이춘아

 

 

지난 일요일 저녁 천둥번개를 날리면서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토네이도가 미국의 중남부 지역을 쓸고 지나갔습니다. 이 곳 네쉬빌 지역은 도시 중심가의 건물과 가로수가 손상되는 정도로 비교적 가볍게 토네이도가 스쳐갔지만, 아래 지방인 조지아주에는 22명이 사망하고 일 백여명이 다치는 큰 재해를 입었습니다.

 

나무로 지은 집이 많은 곳이라 평상시에는 한국의 신도시 일산 정발산 아래에 있는 그림같은 나무집이었으련만 토네이도가 쓸고 간 뒤의 모습은 처량하게 널부러진 판자때기 들 뿐이었습니다. 뉴 밀레니움으로 인사를 주고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천재지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무력해지는 인간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연초까지만 해도 낮 2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따뜻한 봄날이라 이 곳은 이러다 여름이 되다보나 했는데 겨울이 오긴 오더군요. 한동안 추워 추워 하면서 다녔습니다. 어제부터 폭풍우가 지난 뒤 가을같은 청랑한 날씨로 모처럼 화사해졌습니다만 오늘자 신문 일기예보 가운데 깨알같이 작은 각국 도시 이름 가운데서 Seoul을 찾아보니 서울은 화씨로 24/13(최고/최저)도입니다. 이 곳 네쉬빌은 64/34도입니다.

 

미국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온도계산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은 날씨에서부터 오븐온도에 이르기까지 화씨로 사용하고 있기에 섭씨로 익숙해진 우리에게 일일이 화씨를 섭씨로 계산해야만 합니다. 번거롭지만 그렇게 계산을 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화씨를 섭씨로 바꾸는 방법을 기억하시고 있나요.

 

C=(F-32)*5/9입니다. 가령 오늘 네쉬빌의 최고온도가 화씨로 64도이니까 섭씨로는 영상 17, 서울은 영하 4. 이렇게 계산하고 나서야 감이 들어옵니다. "아이고 서울은 낮에도 영하 4도면 되게 춥겠다" 이렇게 말입니다. 여기 온지 6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연필로 침 묻혀가며 온도 계산을 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화씨를 섭씨로 바꾸어 계산해야만 그 온도를 몸으로 가늠할 수 있듯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섭씨니 화씨니 그런 측정도구에 의존하게 되었을까요. 최근들어 자주 사용하고 있는 체감온도라는 표현은 과학적 측정에만 의존하는데서 벗어나 인간의 원래 감성을 중시하게 되는 표현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더욱 과학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체감온도라는 표현이 영어로는 무엇일까 생각하고 언제 한번 물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신문의 일기예보란 아래 켠에서 발견했습니다.

 

한국의 신문기사 가운데 가장 크게 변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일기예보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일기예보란에 낭만적인 문구가 실리기 시작하면서 아 재미있다 생각했었는데 그 후 신문사간에 경쟁이라고 하듯이 일기예보란이 다양한 기사거리로 꾸며졌던 것이 기억납니다.

 

미국신문의 경우 이 곳 테네시 신문의 예를 들면 일기예보란이 한 지면의 1/3을 차지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기사거리는 없고 테네시 주의 온도, 미국전역의 온도, 세계각국 도시의 온도, 그리고 체감온도를 비롯하여 오존 지수, 알레르기 지수까지 여러 가지 측정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있나보다 했었는데 체감온도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체감온도라는 영어표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관심 있는 만큼 영어도 보인다).

 

체감온도가 영어로 무엇인지 그 동안 생각해보셨나요. RealFeel Temperature라고 하네요. 몸으로 느끼는 온도가 실제로 느끼는 온도라고 정리하여 봅니다. realfeel 이라고 realfeel을 붙여서 합성어로 사용하고 있는걸 보면 미국서도 만들어 사용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시사용어인 모양입니다. 한국서 가지고 온 2,621쪽 분량의 96년판 동아프라임 한영사전에도, 여기서 산 97년판 옥스포드 영영사전에도 체감온도, realfeel 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체감온도의 측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신문 일기예보란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RealFeel Temperature: A composite of the effects of temperature, wind, humidity, sunshine intensity, cloudiness, precipitation, and elevation on the human body. 여기다 몸이 쑤시는 정도가 포함되면 개인적인 체감온도가 되겠지요.

 

신문에 적힌 체감온도 숫자보다 더 낮을 듯 싶게 느껴지는 음산한 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습니다. 미국교포 사회에서도 부모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전기를 꼽아 뜨끈뜨끈하게 지질 수도 있는 옥돌보료라고 하네요. 미국 올 때 전기장판이라도 가져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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