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가상현실

이춘아 2019. 8. 8. 12:43


미국통신38 가상현실

July 26, 2000

이춘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나의 물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번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경거리 속에서 하나의 답을 내렸습니다. 사람은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의 세계를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비교하여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일반 동물들이 현실에 적응하며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사람이라는 동물은 현실따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며 살아가는 비중이 더 큰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문화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을 읽는다, 음악을 듣는다, 영화를 본다, 게임을 한다는 행위들이 그러합니다. 가상의 현실을 즐기는 것입니다. 삼성 광고처럼 터치하나로 꿈의 세계가 벌어지는 그러한 현실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아주 이율배반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시시한 텔레비전 드라마라도 드라마로 보면 더 크게 감동받고 금방 눈물을 흘리는데 같은 장면이라할 지라도 현실에 일어나면 냉냉해진다는 것입니다.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인간의 가상현실 체험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회사가 제작한 영화를 테마로 놀이상영관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트위스터, 킹콩, 대지진, 죠스, 이티, 백튜더퓨처, 터미네이터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영화를 테마로 한 곳입니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상태를 영화화한 것인데 놀이상영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가장 공포적인 영화장면을 다시 현실화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공포를 체험하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영화장면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주는가하면 여기저기서 실제 지진이 일어나듯 건물이 부서지고 불꽃이 튀며 홍수가 나고 내가 타고 있는 차가 뒤흔들립니다. 으악 하는 소리가 나지만 즐거움의 경악일 뿐입니다. 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또 다른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오죽하랴 싶습니다.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내가 실제 주인공이되는 착각을 얼마나 리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가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합니다. 전에는 돈안드는 머리속 가상현실을 즐겼습니다만 오늘에는 돈드는 가상현실을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테마파크를 찾는가?는 결국 가상현실을 최대한 즐기게 하는 것이 테마파크의 핵심입니다. 그 모든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났었고 앞으로 있을 현실이지만 만들어서 즐기고 있습니다. 그것도 극한의 유쾌한 공포체험으로 스트레스도 풀었다는 착각을 일으키면서.

 

그런데 플로리다 둘쨋 날 해변가에 갔다가 바다에 홀려서 나의 짐가방을 그대로 모래사장에 둔 채 한시간 가량 해수욕을 하고 놀다 나오니 내 가방이 없어졌습니다. 어쩌나 어쩌나 정말로 내 가방을 누가 가져가 버렸네. 동동 그렸지만 내 짐 가방이 실제 없었졌다는 냉혹한 현실만 남아 있었습니다. 짐 가방속에는 내가 늘 들고 다니던 핸드백, 핸드백 속에 각종 카드가 든 지갑, 다행히 현금은 7달러밖에 없었지만 내 시계, 내 카메라. 아이고 어떤 놈이 내 가방을 들고 가버렸네.

 

영화에서만 보던 해변가 감시단이 경찰에게 연락하여 경찰이 오고 경위서를 쓰는 과정에서 내 속에서는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조차 오락가락합니다. 빨리가서 카드 잃었버렸다고 알려야 하는데 즉시 연락할 전화번호조차 없고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 한국 카드회사로 전화하기 까지 세시간 가량 걸렸는데 그 세시간은 가장 극한의 공포체험으로 나를 쥐어짜는 듯 했지만 그것은 가상이 아닌 진짜 현실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고 놀러왔는데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 그 다음날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구경갔다는 것 아닙니까. 큰 경제적 손실은 없었지만 몇 년동안 나와 더불어 지내던 물건들이 없어졌다는 것을 생활속에서 느낄 때마다 정말로 잃어버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씁쓰레 하곤 합니다.

 

내 가방 -어쩌면 나의 존재 일부가 담겨있는- 을 정말로 잃어버렸다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어느날 내 가방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것도 진짜인지 가상인지 그런 것도 실감나지 않고 뭐가 진짜 실감나는 현실인지 구별이 가질 않습니다. 한번 놀다오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다 장자가 한 말처럼 꿈에 본 나비가 진짜 나인지 현실속의 나가 진짜 나인지 구별이 안가는 그런 날이 오도록 우리의 현실은 더욱 더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말어. 그래도 재미있는 걸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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