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37 - 플로리다 올랜도
July 19, 2000
이춘아
알라바마, 미시시피주에 계신 남편의 스승님을 만나 뵙고 오는 것으로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던 분 가운데 한분이 플로리다에 다녀올 수 있냐고 하십니다. 플로리다에 콘도를 갖고 계신데 올 여름 가족휴가가 취소되는 바람에 잡힌 일정을 그냥 묵히게 되어 아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생각나시더랍니다.
그래 4박5일의 플로리다 여행을 하였습니다. 콘도는 플로리다의 그 유명한 디즈니월드가 있는 올랜도 부근에 있었습니다. 4박5일이라고는 하나 오고 가는 날을 뺀 3일동안 논다는 것을 해 보았습니다. 매번 여행길에 남편은 자료수집이라는든지, 모임이나, 방문 등의 목적을 취하고 떠났기에 저와 우리 집 아이 둘이서만 구경다니고 남편은 도서관에 있든지 사람들을 만나든지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남편은 마지막 글 정리를 위해 자료를 싸들고 콘도에서 혼자서 조용히 글을 쓰리라 했었는데 다행히도(?) 컴퓨터 전기연결코드를 가져오지 않아 마음편하게 함께 구경다닐 수 있었습니다.
콘도는 너무 좋았습니다. 1200여 가구(주택으로 구성된)가 있는 대단위의 콘도였습니다. 수영장, 골프장 등의 부대시설을 아주 잘해 놓아 디즈니월드 등으로 구경다닐 필요도 없을 정도였고 집안에는 침대, 소파는 물론이고 일체의 살림살이가 다 갖춰있는 곳입니다. 침대, 소파없이 살아온 우리들이라 넓다란 침대가 어찌 그리 좋은지 한국가면 나도 침대 한번 사서 살아보리라 생각해봅니다. 집안에 세탁기와 드라이어기가 있어 멀리까지 빨래하러 다닐 필요없고 좋은 그릇도 많고 식구들 모두 좋아합니다.
그러다 남편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이런 콘도도 가져보라고 그도 안되면 우리처럼 콘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많이 알든지. 그 말에 해묵은 기억들이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결혼시작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런 식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던 것입니다. 결혼 첫날밤 묵을 수 있는 호텔티켓을 주신 분, 신혼여행을 위한 3박4일의 한국콘도 사용권을 주신 분, 몇 년전 경주 휴가가 취소되어 대신 우리에게 호텔티켓을 넘겨주신 분, 심지어는 결혼하면서 전세방 자금마련을 위해 계를 만들어주신 분들, 남편의 자료수집을 위해 돈을 송금을 해주신 분들, 나만을 위해 쓰라고 돈을 꼬불쳐준 내 친구들 등.
우리는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그러한 도움은 꼭 되갚아야하는 빚으로 여기기 보다는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고 늘 고마움을 가질 수 있는 은혜로, 나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움줄 수 있는 마음을 항상 갖고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일동안의 놀이휴가를 알뜰하게 즐기기 위해 일정을 짜보았습니다. 첫날은 디즈니월드의 엡코트라는 테마파크에서, 둘째 날은 가까운 바닷가를 찾아가 해수욕을, 셋째 날은 유니버샬 스튜디오에서 논다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물론 떠나기전 여행안내 책자를 여러권 탐독해 보았습니다만 그 넓은 곳에서 3일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가 글을 썼다는 플로리다의 꼬랑지 섬 <키 웨스트>는 우리가 묵는 콘도에서만도 700여 키로 떨어진 곳이고 한국에도 유명한 마이애미 비치 역시 450여 키로 떨어진 곳이라 이곳 저곳 다니기에는 오가는 길에 뿌릴 시간소요가 너무 많아 디즈니월드 부근에서만 놀기로 합니다.
첫날 들린 엡코트(EPCOT)는 미래사회의 실험적인 모델(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이라는 표현의 약자라고 합니다. 몇 년전 한국에서 있었던 대전 엑스포와 유사하다고들 합니다. 디즈니월드 초입구부터 예사규모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디즈니월드에 몇 개의 테마파크가 있는데 모두 다닐 수는 없고 하루에 하나 정도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여행정보가 그제서야 이해되었습니다.
엡코트 매표소 앞은 어디서들 몰려왔는지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알뜰하게 하나라도 더 보고 가려고 아이를 재촉하고 있는데 남편은 여기 놀러와서까지 조급해지지 말자고 일침을 가합니다. 맞아! 우리는 놀러와서 조차 왜 이렇게 악착같아 지는 것일까. 저녁 9시 폭죽놀이를 보려면 12시간을 여기서 있어야 되니까 여유를 갖자고 다짐해 봅니다.
엡코트라는 테마파크는 에너지, 바다, 대지 등을 주제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한 최첨단의 놀이형 결집체라고 합니다. 처음 들어간 곳이 우주선 지구호(spaceship earth)라는 곳입니다. 타임머신이라는 기차를 타고 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역사를 훝어보는 곳입니다. 그동안 워싱톤, 뉴욕 등에서 보았던 자연사박물관, 역사박물관에서 보관된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훝어 현대로 왔는데 가장 최근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장면이 바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정상회담입니다. 회담을 담은 비디오가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흘러가듯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50년 냉전이 오늘에와서야 종식되는듯한 착각을 받습니다. 편집자의 의도도 그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는 박물관도 이런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누가 미국에서 열흘 정도 보내려 한다면 다른데 갈 것없이 이곳에 와서 즐기면서 구경하고 가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놀이의 형태를 띤 박물관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나라든지 박물관은 만년적자에 시달리지요. 국가의 뒷받침이 없으면 유지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곳 올랜드는 연중 무휴로 사람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소문에 소문을 달고 모여든다고는 하지만 재미의 결정체를 보여주고 있는데는 어쩔수가 없습니다. 단3일간의 구경으로 왜 미국은 돈을 잘 벌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최신의 시설에다 엔터테인먼트가 첨가되는 자본주의의 극치를 봅니다. 게다가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와 자연환경으로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까지 들뜨게 만듭니다. 뉴욕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보았건만 놀러온 사람의 표정은 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습니다. 밤 9시에 한다는 폭죽놀이와 레이저 쇼는 감탄 그 자체입니다. 호수중앙에서 펼쳐지는 폭죽과 레이저 쇼는 올림픽 개최시 사용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일 듯 싶습니다. 매일 저녁 저런 쇼를 한다는데 공해상태가 어떤지 걱정됩니다. 공해조사하러 온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구경한번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