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밥 하는 시간], 서울컬렉션, 2019
좋은 글이 많아 옮겨 적었다.
128. 아침부터 뒷집 할머니가 밭에서 풀을 뽑고 계신다. 그 뒷모습이 마치 움직이지 않는 정물 같다.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있다 보면 저만치 가 계신다.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동작이다. 밭을 매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는 저 고요함은 무엇일까?
이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한 고요가 일상의 힘. 몸의 힘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호미질을 하거나 마당에서 풀을 뽑을 때 느끼는 기쁨이 몸의 기쁨이고, 그 일이 몸에 쌓여갈 때 내 몸 또한 그들처럼 단단하게 고요해질 것이라는 걸 말이다.
132. 비로 쓸면 천천히 내 속도대로 일을 하게 된다. 내 몸을 느끼고, 방바닥을 느낀다. 청소와 청소하는 내 몸이 분리되지 않는다 청소를 하면서 나 자신이 맑고 단단해진다. 단정해진 방에서 나 또한 단정해진다.
호미로 밭을 갈 때 흙의 냄새와 흙의 부드러움, 촉촉함을 손과 발, 온몸으로 감촉하게 된다. 그럴 때 몸의 즐거움이나 든든함이 생겨난다. 몸으로 살면 다양한 감각과 감수성이 살아난다. 내 생명과 타 생명, 사물과의 공명대가 생긴다.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 이를테면 차를 마시거나 말을 하고 설거지를 할 때, 청소를 하거나 마당의 풀을 뽑을 때 내 몸과 함께 있으면 일상의 순간순간이 빛난다. 지루한 일이 되기보다 깨어 있는 순간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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