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6 - 간소하게 살기
October 22 1999
지금으로부터 두달하고도 열흘전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이곳 네쉬빌에 도착하였습니다. 한인감리교회 목사님 가족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이 곳 시간으로 오후 4시30분 경. 이것저것 먹어서 배고픈 것은 아니나 속이 느글느글하던 차 한국식당에 가서 우선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가 살 아파트로 가보자고 목사님이 제안하셨습니다. 아리랑이라는 한국식당에 가서 된장찌개, 김치찌개, 두부찌개를 시켜놓고 실컷 먹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온 지 단 하루만인데 게걸들린 사람들처럼 먹었습니다. 식당이 있는 시내에서 우리가 살 아파트는 한 20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우리식의 3층 연립주택을 아파트라고 부르고 있더군요. 물론 시내에 있는 고층아파트도 아파트이고, 단독주택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면 아파트라고 부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살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예상은 했었지만 텅 비어있는 상태는 미국이어서 더욱 더 썰렁한 느낌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방2개짜리 아파트. 한 30여평 남짓한 규모에 방2개, 목욕탕 2개, 붙박이 옷장, 거실 겸 식당, 그리고 부엌이었습니다. 부엌에는 냉장고, 전기레인지, 식기세척기(그릇이 몇 개 되지 않아 아직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한)가 있었습니다. 불이 켜지는 곳은 부엌과 목욕탕 뿐이었고, 그외에는 입주자가 전기스탠드를 가지고 와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낑낑 거리며 가지고 온 짐을 마치 숨겨놓은 보물단지 열어보듯 풀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짐을 풀어 놓고보니 이 넓은 아파트를 채우기에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미국 오기전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각오한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 번 간소하게 살아보자고. 한번씩 살던 집을 정리해보면 느끼는 것이겠지만 왜 그렇게 물건이 많은지, 그것이 바로 짐이지 생활도구인가 할 때도 있지요.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더더구나 잡다한 그릇들이 많더군요.
숫자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하나 둘 셋 이상을 넘어서면 그것을 ‘많다’ 라고 표현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 몇가지를 넘어서면 무슨 그릇이 있는지, 무슨 옷들이 있었는지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꼭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새 것에 대한 무한정의 욕망으로 이것 저것을 사게 되고 그것이 집이라는 공간으로 들어와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리고 또 다시 사고. 이런 일을 한두번 경험한 것도 아닌데 그 일을 반복해 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살림을 반성해 보아야겠다는 생각했었지요. 절에서 보았던 방이 생각납니다. 깨끗한 온돌방 안에 대나무 옷걸이에 걸린 옷 몇가지, 낮은 책상과 책 몇권, 깔고 덮는 이불과 베개가 한 구석에 단정하게 개어 있었지요. 그러고도 살수 있건만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은 왜 그렇게도 많을까.
그러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텅 빈 아파트를 보면서 채울 것부터 없나 생각했었지요. 다행히 가져온 돈을 절약해 써야하고 일년 있다 갈꺼니까 하면서 계속해서 나의 머리를 주지시키지 않았더라면 또 다시 사고싶고 채우고 싶은 욕심으로 짐을 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두달하고도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이 아파트 안에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텔레비전, 비디오, 책상으로 쓰는 접을 수 있는 긴 테이블, 식탁으로 쓰는 접을 수 있는 정사각형의 테이블과 접의자 4개, 긴 스텐드 3개와 작은 스탠드 하나, 청소기, 이부자리와 베개, 그리고 노우트북과 프린트, 가져온 팩스용 전화기 한 대와 카세트 한 대입니다. 이 정도면 스님이라도 필요한 것이겠지요. 텔레비전과 비디오는 없어도 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텔레비전이 없으면 온갖 정보가 차단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제일 먼저 사게 되더군요. 침대와 소파, 텔레비전 올려놓을 수 있는 가구는 불편한대로 나마 없이 살기로 했습니다.
집 전체가 카페트로 깔려있어서 따뜻할 것 같았는데 가져온 홑이불로는 어림도 없어 이불을 샀습니다. 세탁은 아파트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장을 이용합니다. 지금 부엌으로 가서 보니 전기밥솥과 토스트기와 냄비, 컵도 샀네요. 소위 정착용 생필품이라고 하는 것을 사는데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더군요.
가장 필수적인 가구라고 하는 것들을 보십시오. 책상과 의자를 빼고는 모두 가전제품입니다. 전기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미국감리교회 커뮤니티 센터의 영어 선생님은 자신의 시어머니는 Y2K준비를 이렇게 마쳤다고 합니다. 84세의 할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과 책, 전기가 나갈 경우 책을 읽을 수 있는 후렛쉬 하나 라고 합니다. 초콜릿과 책, 그리고 후렛쉬. 재미있지요.
한 2주전 가능하면 사지 않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신문광고를 보다가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거야 하면서 당장 사러갔었지요. 제품 용어가 bed desk라고 합니다. 베드에서 사용하는 책상이겠지요.
현재 책상은 남편이 차지하고 있고, 식탁은 아이가 숙제하느라고 점령하고 있고, 나의 공간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 방에 엎드려 읽고 쓰고 있었지요. 불쌍해 보이지만 사실 저는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뒹굴뒹굴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이동이 편리한 앉은뱅이 작은 책상 하나쯤 있었으면 했지요. 민속촌에 가면 선비들이 앉아 책을 읽는 그 책상보다 약간 작은 것 말입니다. 한국의 우리집에도 밥상이 있었지만 읽고 쓰는 작은 공간으로는 크니까 사용하기 불편했지요.
지금 바로 그 베드 데스크 위에서 노우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침대가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침대가 없으니까 등을 벽에 기대고 이불위에 앉아 그 데스크를 올려놓고 책도 읽고 쓰는 작업도 할 수 있습니다. 크기는 노우트북 하나 올려놓을 수 있는 쟁반크기이고 높이는 20cm 정도로 다소 낮지만 앉아서 무얼하든지 별 불편함이 없지요. 게다가 책을 세워서 읽을 수 있도록 높낮이를 조절할 수 책받침 기능이 있고 양옆에는 신문꽂이같이 생겨서 한두권의 책과 공책을 꽂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연필이 구르지 말라고 홈도 파놓았습니다. 이 데스크는 한국에 가져가서도 나의 애용품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군요.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것이 있는지는 가구점을 잘 다녀보질 않아 잘 모르지만 없다면 한국에도 만들어 놓으면 사 갈 사람들이 꽤 있을 듯 합니다. 값은 25달러 약 3만원 가량 되겠습니다. 목제품입니다. 이 글을 읽은 사람 가운데 이런 제품을 목공실에 부탁하여 보거나 제품으로 팔고 싶다면 연락주시길.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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