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구슬이 서말이라도

이춘아 2019. 8. 6. 07:48


미국통신 5 -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October 10, 1999

 

 

최근 몇 년간 애용하는 속담중 하나입니다. 어제 토요일 저녁 그동안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모아온 팜플렛을 이면지에다 붙여 보니 한 권의 파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자료가 암만 많아도 꿰어야 알짜.


미국에 오니 구멍 세 개 뚫린 파일 (view binder 라고)을 많이 사용하고 있더군요. 초등학교 5학년인 저희 집 아이도 학교 수업용으로 이 파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편리한 점이 많은 것 같아 저도 사용하고 있는데 복사지 이면지를 모았다가 그 이면지에 팜플렛을 붙여 파일로 만들어 놓으니 보배가 따로 없더군요.


저는 한 때 자료 리라 불릴 정도로 어디 가면 자료를 잘 모아왔지요. 일단은 가져오긴 하는데 집에 오면 나중에 정리하지 하면서 한 구석에 잘 모셔놓았다가 어느 날 재활용분류로 들어가 사라지곤 했지요. 그래서 한동안은 자료를 모으기를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언제 볼 거라고, 욕심내어 갖다 놓고는 쓰레기로 갈 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가져왔던 자료들이 나딩굴 때와는 달리 그 자료들이 비록 이면지라 깔끔하지는 않지만 테이프로 붙이고 구멍을 뚫어 정리한 후 다시 차분히 읽어보니 그 전에는 들어오지 않던 새로운 내용과 정보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크기, 지질, 부피의 팜플렛을 손으로 만지고 읽어 보는 느낌은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오늘로 미국에 온지 꼭 두 달이 되는 날입니다. 거의 매주 토요일은 구경가는 날로 정하여 제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구경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열심히 그 곳의 팜플렛을 유심히 보고 수집하는 동안 획득한 하나의 성과가 있습니다. 이 곳 내쉬빌에 있는 파르테논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크기 그대로 복구한 형태의 건축물로 내부에는 아테나 여신상과 복사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아래 층에는 코완이라는 사람이 수집해놓은 미술품 상설전시와 기획전 등이 열리고 있는 곳입니다


이 곳에 구경갔다가 팜플렛 가운데서 도슨트 교육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나도 교육을 받고 싶다는 내용을 편지를 보냈고 Wecome 답장을 받아 지난 914일부터 매주 2시간씩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2주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대 그리스 예술사를 비롯하여 작품전시 테크닉, 안내 테크닉 등을 배우게 됩니다. 도슨트(docent)라 함은 박물관의 안내 봉사자를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호암갤러리가 이 제도를 도입하여 서울 중구 순화동에 있는 호암갤러리에 가시면 2, 4시에 도슨트가 나와서 전시품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도슨트, 또는 문화봉사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저도 미국 박물관에 도슨트제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을 들은바 있기에 도슨트 교육이 있다는 홍보물을 보자 이 기회에 나도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영어강의를 그것도 고대 예술사를 영어로 강의받는다고 하니 대단한 것같지요. 사실인즉 세 번째 교육시간이 그리이스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 것이었습니다. 고대 예술사를 전공한 여자교수님이 와서 강의하는데 쏼라쏼라였지요. 다행히 슬라이드를 보면서 하는 것이었기에 몇 개의 단어를 연결하여 아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지요. 아테네 여신을 이름할 때 영어식 발음이 씨나라는 액센트만 들리고, 제우스 신도 쥬스라고 발음하더군요.


아시나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 왕을 데비드 라고 발음할 때 영웅적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을....

강의가 끝난 후 복사물을 나누어 주더군요. 일주일전만 줬어도 좀 더 알아듣는 것인데... 웬걸 집에 와서 읽어보니 어렵더군요. 진작에 그리이스로마 신화라도 제대로 읽어둘 것을. 어쨌거나 앞으로 교육을 받고 나면 봉사까지 하겠다고 신청서에 썼답니다. 적어도 한국인 관광객들 안내는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어 팜플렛이 없어 그 팜플렛 번역도.

지난 번 교육갔을 때 관광객들이 도슨트를 따라 다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날의 도슨트는 지팡이 짚고 다니는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은 도슨트 1기생으로 첫 오리엔테이션에 우리를 격려차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열심히 설명해 주는 할머니, 열심히 경청하는 관광객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장면이지요. 호암갤러리만 해도 미술사 전공을 넘어서서 연령과 외모를 우선시 하지요. 고객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명분하에. 그런데 바로 내가 목격한 이 장면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미지이지요 <지팡이 짚은 할머니 도슨트>.


파르테논 박물관은 지난 해 처음으로 이 도슨트제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올 4월에 20명의 도슨트를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교육은 무료입니다.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좀더 익숙하게 한 다음 교육을 받을까 생각도 했지만 교육을 받고 조금이라도 봉사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이번 9월 교육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어제 토요일. 금요일 오후부터 내린 비가 계속되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있던 산천초목이 봄비를 맞은 양 싱싱한 초록빛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저는 가족을 재촉하며 구경을 갔지요. 이번에는 테네시가 낳은 미국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의 집입니다. 이름하여 The Hermitage: Home of President Andrew Jackson입니다. 입장료는 어른 9달러 50센트, 어린이 4달러 50센트. 한명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쿠폰이 있어 총 입장료는 14달러. 15분간의 홍보물 상영, 잭슨의 유물전시, 그리고 잭슨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후 기거하던 집과 정원, 묘지 등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잭슨 대통령의 집은 다른 박물관화된 집(Belle Meade Plantation, Belmont Mantion)들에 비해 검소한 편입니다만 그 당시 노예들이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저택의 구조들이지요. 잭슨 대통령 시절의 미국 지도를 보면 27개 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의 미국 서부지역은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가 이런 유적지에 와서 새삼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200여년의 짧은 역사라고는 하나 전쟁으로 만들어진 나라임을. 생존과 영토 확장을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치룬 나라. 인디언과, 영국과 스페인과, 그리고 남북전쟁을 치룬 피로 얼룩진 역사를 이면에 깔고 있지요. 잭슨 대통령 역시 인디언과의 싸움에서 승전한 전쟁영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붉은 피의 전쟁이 하얀 피의 전쟁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호전적인 DNA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겁니다. 미식 축구를 보십시오. 그것이 어디 스포츠입니까. 전투이지. 미국의 남자아이들이 어릴 때하는 싸움놀이가 인디언과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중남부 지역은 지역은 이름에서 인디언을 떠올리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한번은 그레이트 마운틴 국립공원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길래 산너머 갔더니 인디언을 철저히 상품화하고 있더군요. 인디언 지역을 설명하는 인디언들은 무기력하고도 습관적으로 설명할 뿐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강렬한 인디언은 어디가고 나의 3배정도 되는 몸무게로 게으르게 움직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인디언의 종류도 다양하다고 하는데 그곳의 인디언들은 하나같이 살찐 몸매를 갖고 있더군요.


인디언을 Native American라고 하더군요. 네이티브라고 하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줄 알았는데. 이럭저럭 별 것을 새삼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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