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대답들이 있었다

이춘아 2023. 7. 14. 09:14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레제, 2023.

(245~250쪽)

2020년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은 아름다웠다. 그 봄에는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결코 그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그 봄에 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생각에 잠겨 혼자 몇 바퀴고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 해와 달 사이, 낮과 밤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하루 종일 틀어놓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무심코 빠져드는 일이 많아졌다. 나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자주 들었는데, 어쩐지 그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의지할 만한 것은 독서뿐이었다. 
그럴 때면 늘 그랬듯이.

백오십여 년 전, 미국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사람이 살았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그는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향 콩코드 근처의 호숫가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그해 독립기념일인 7월4일,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후 이 년이 넘도록 그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 외에는 물건을 사지도 쓰지도 않는 실험적인 삶을 살았다. 그 시절의 일기를 간추려 펴낸 책이 바로 [월든]이다. 

[월든]을 펴낼 때의 일은 1854년 8월10일 목요일의 일기에 남아 있다. 

어제 보스턴으로 갔다. [월든]이 출간되었다. 딱총나무에 물과일이 맺혔다. 

[월든]같은 명저를 펴낸 날도 딱총나무에 물과일이 맺힌 날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소로가 가진 크나큰 힘이다. 소로는 삶의 근원적인 것만 접하기 위해 물질적인 소유를 줄여야 한다고 일기에 썼다. 나의 소유를 줄일수록 자연은 점점 늘어난다. 통나무집이 작아질수록 집 밖의 공간은 그만큼 불어나듯이. 

무소유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을 다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일기에는 온통 자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올해는 관찰의 해다”라고 1852년 7월2일의 일기에 써놓기도 했거니와, 그는 어미새가 새끼를 돌보듯 주변의 나무와 동물과 노을과 호수를 살펴보고 또 살펴본다. 돌보는 사람의 눈 앞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펼쳐진다. 

무일푼이었지만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연을 가지고 있었다. 욕망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돌보는 사람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이 가난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에게는 풍요로운 삶이 됐다. 

너무나 많은 호수와 너무나 많은 노동. 너무나 많은 고독과 너무나 많은 책과 너무나 많은 일기와 너무나 많은 침묵, 너무나 많은 들꿩과 너무나 많은 도요새와 너무나 많은 개미떼. 너무나 많은 추위와 얼음과 눈.

너무나 끝없이 펼쳐지는 허공. 
너무나 경이로운 세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 세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듯 자연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돌볼 수밖에 없다. 돌보는 사람에게 이 세계는 딱총나무에 물과일이 맺히는 것과 같은 놀라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세계가 그런 곳이라면,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과 같을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들이 속출한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만 해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내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일어난 그 모든 일들의 의미를 나의 지혜로는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상실의 깊은 강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럼에도 소로가 먼저 있어 그 강물 속으로 걸어가도 괜찮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1854년 2월 19일, 소로의 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 이 시기는 여름철에는 걷기 어려운 늪지, 강, 호수를 걸어야 할 때다. 

얼어붙은 늪지와 강과 호수를 보며 그는 우울해할 것이 아니라 그 위를 걸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그 위를 걸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추운 날이 1853년 1월3일에 쓴 일기에 그 해답이 나온다. 

나는 자연 속에서 온전히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이 온통 인간의 것으로 차 있다면 나는 기지개를 켜지 못했을 것이고, 온갖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에게 인간은 제약인 반면, 자연은 자유다. 인간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나, 자연은 나를 이 세상에 만족하게 한다. 

호수공원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벚꽃이 피었다. 벚꽃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마스크를 낀 채 사진을 찍었다. 나는 돌다리 위에서 잉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얼어붙은 늪지와 강과 호수를 건너 소로는 죽는 순간에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알게 됐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알게 됐을까? 잉어들이 몸을 뒤척이자, 대답처럼 붉고 하얀 빛들이 물 위로 번뜩였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대답들이 있었다. 

그 빛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서 있다. 어둑해진 뒤에야 나는 호수에서 돌아왔다. 

소로가 먼저 있어……

홀로 있는 홋홋한 밤에 나는 그 문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로소 소설 쓰는 게 두렵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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