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999

상해 항일운동 유적

한국근현대사학회, [국외 항일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 2002.상해 지역상해는 양자강과 황포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위치한 중국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이자 국제도시이다. 아편전쟁 직후 체결된 남경조약(1842)으로 영국(1845), 미국(1848), 프랑스(1849) 등 열강들의 조계지가 설정(미국과 영국의 조계지가 통합되어 1863년 공동조계가 됨)되면서, 상해는 동서양이 만나는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인 동시에 열강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상해로 가는 주도니 길은 신의주 진남포 인천을 통하는 것이었다. 특히 진남포와 인천은 중국의 정크선이 자주 드나들어 상해로 가는 주요 지점으로 지점으로 이용되었다. 1910년을 전후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상해로 모여들었다. 대한제국 군인출신인 신규식은 상..

1920~40년대 상하이

조너선 카우프만,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최파일 옮김), 생각의힘, 2023.(124~127쪽 )침략자들의 성공에 자극 받은 중국의 반정부 분자들은 황제의 허약성을 감지하고 청나라 조정에 도전했다. 1850년에는 태평천국의 난이 중국을 뒤흔들었다. 중국 정부를 개혁하고 서양을 따라잡으려는 시도는 수구적인 황제들과 조정에 의해 좌절되었다. 중국 개혁가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황제와 청조의 무능한 통치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량치차오(양계초)는 “우리의 내부적 여건을 알아차리자마자 유럽인들은 개미 떼가 더럽고 악취 나는 것에 달라붙듯이, 무수한 화살이 하나의 과녁에 집중하듯이 제국주의..

중국 역사의 모자이크 일부 복원

조너선 카우프만,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최파일 옮김), 생각의힘, 2023.(35~ 41 쪽)중국 공산당 판본의 역사에는 적잖은 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다른 진실들도 존재한다. 상하이는 중국의 용광로, 중국을 형성한 모든 세력들 - 자본주의, 공산주의, 제국주의, 외국인, 민족주의-이 한데 모인 도가니였다. 1895년에 이르자 상하이는 현대적인 런던의 설비에 버금가는 시가 전차 체계와 가스 공급망을 보유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타이판 빅터 서순의 주도로 시카고에 버금가는 마천루와 스카이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상하이는 당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나머지 세계가 대공황에 빠져들고 있을 때 장제스 정부는 화폐를 안정시키고 수출 붐을 일으키기 위해 서순과 협력했다. 상하이는 중국의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