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24~29쪽) 그리고 그 폭염의 밤, 아스팔트의 열풍을 맞으며 텅 빈 집으로 걸어 올라와 찬물 샤워를 하는 내가 있다. 밤마다 위아래 집과 옆집에서 에어컨을 켜기 때문에, 실외기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바람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면 베란다 문과 창문들을 모두 닫아야 한다. 밀폐된 습식 사우나 같은 거실에서, 방금 끼얹은 냉수의 서늘함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거기 올려놓은, 여전히 수신인이 정해지지 않은 유서를 봉투째 짖어버린다. 처음부터 다시 써. 그건 언제나 옳은 주문이다. 처음부터 나는 다시 쓴다.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비 오듯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찬물 샤워를 하고 책상으로 돌아온다. 조금 전에 쓴 형편없는 것을 다시 찢..